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2nd story
between pages
diary
with others
film
my work
T.P
office
feminism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22. 11. 19. 15:49

영화 제목을 왜 저렇게 지었을까 싶었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수경(엄마)의 속옷을 같이 입는 이정(딸)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속옷을 스스로 산다. 수경과 자신을 분리해 내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발동되는 신호로 이해했다. 

"나는 적당히 살고 싶었어.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이정에게 가해지는 수경의 난폭성. 아마도 수경은 적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핑계를 이정의 탓으로 여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이 이렇게 척박한 데도 나는 너를 먹이고 키웠다.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난 이후에 생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정은? 어린 시절 수경에게 쓴 편지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 이정은 이유도 모른 채 수경의 폭력을 견뎌왔다. 마트에서의 사고로 수경의 폭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방식으로 수경에게 맞선다. 수경의 애인에게 고기값을 뒤집어 씌운다던가, 집을 나간다거나, 울며 수경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런 태도는 그동안 수경의 스카프를 몰래 가위로 조각내던 소극적 저항과는 다르게 밖으로 분출된다.

이렇게 불편한 관계를 이어나가면서도 두 사람은 속옷을 공유한다. 수경은 나쁜 것만 빼닮은 이정을 보면서 자신을 보았을 것이고, 이정도 자신의 미래를 수경에게서 엿봤을지 모른다. 거울을 보듯. 그래서 수경이 이정을 향해 '죽여버리고 싶다'고 한 말은 '죽고 싶다'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분리되지 못한 채로 수경은 자신에 대한 혐오를 이정에게 풀고, 이정은 성장을 멈춘채 수경의 마음을 갈구한다. '너는 왜 자라지를 않니?'(정확한가?) 라는 수경의 대사 - 수경으로 부터, 그리고 잠깐 마음을 주고 받았다고 생각한 직장동료 소희로 부터 채워진 적이 없는 이정은 이제 타인에게 마음을 갈구하지 않을 지 모른다. 더 이상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속옷 사이즈를 찾았듯 스스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정전이 일어난 날 밤 어둠속에서 나누는 수경과 이정의 심상한 대화 장면이 좋았다. 어둠 속에서 수경이 한 번은 '엄마'의 얼굴이 되지 않았을까.

수경이 딸과 똑같은 코트를 선물한 애인에게 보란듯이 코트를 벗어 던지고 속옷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도 통쾌했다. 너에게 내가 일순위가 아니면 필요없다. 꺼져! 뭐 이런 기분. 

수경과 이정에게 고르게 시선을 안배한 감독의 균형이 좋았다.

수경 역할의 양말복 소희 역할의 정보람 배우 연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