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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1. 11:28

사람에 대한 불신은 人間觀까지도 비관적으로 변화시켰다.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자각이 들었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네트워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밥벌이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말고,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자각 말이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 나쁘다기 보다, 관계를 맺는 형태가 그러해서 좋은 만남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꼭 그런 것 만도 아닌 것 같다. 좋은 사람들 가운데에 나를 놓아두고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정혜윤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읽었다.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라는 부제가 붙은, 표지부터 아름다운 책. 그의 다른 책들과 같은 책이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과 그 말에 의지해서 말을 통해서 새롭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다양하게 변주되었던 내용이다. 마음 속에 이야기가 많은 사람. 정혜윤은 늘 같은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자꾸자꾸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특히 이 책은 제목이 주는 기대가 컸다. 이 어지럽고 슬프고 삭박하고 야박한 세상에서 어떤 말을 부여잡고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도 닿아있다. 첫 장을 읽는데 결이 조금 다르지만 홍은전의 「그냥, 사람」이 생각나기도 했다. 정혜윤의 책에는 언제나 많은 포스트 잇을 붙인다.


나는 언어가 우리를 구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말,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7


그래서 자기의 생각과 삶을 어떤 언어로 표현하느냐,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언어는 나를 내가 살고 싶은 삶으로 안내해 주는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제목이다. 너무 근사한 말이다.


삶이 짧으므로 오래오래 기억될 아름다움이 필요했던 것 처럼, 우리에게는 자유라는 단어가 필요하다. 이 부자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세상이 무엇이라고 하든 우리 안에 파괴될 수 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는 것. 그러나 사적으로는 자아에 엄청나게 집중하면서도 공적으로는 위축되고 소심해져,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는 초긴장 신경증적 지옥을 사는 우리가 내적으로 소중한 무언가를 버리기는 얼마나 쉽던가. 이 와중에도 자신의 무언가를 굿꿋하게 지키고 사는 인간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품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48


이런 문장을 읽다보면, 정혜윤도 마냥 이상주의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척박함을 아는구나, 그래도 좋은 삶으로 방향을 잡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은 묘하게 용기를 준다.


제일 나쁜 건 제가 장애인의 아버지란게 아니에요. 제일 나쁜 건 저에게 약해질 기회가 많다는 거예요. 이 애는 내 삶이 힘들다는, 언제나 편리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핑계일 수 있어요./77


이런 성찰이 가능하구나. 슬픔이나 고통, 힘듦에 빠져져 허우적 거리지 않는 이런 태도!


슬픔과 아픔이 경이롭게 변한 말, 하쿠나마타타(다, 잘 될 거야). 생의 경이가 아니라 생의 경시가 가득한 이 사회에서 조건이 하나 붙으면 이 말은 백 퍼센트 진실에 가까워진다. '당신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108


표시를 해두는 문장을 모두 다 기록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간혹 한 문장 때문에 표시를 해두기도 한다. 이 문장은 '당신이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면'에 주목했다. 거저 얻어 지는 귀한 삶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울 속에서도, 슬픔 속에서도, 백 퍼센드 우울 만도 슬픔만도 아닌 순간을 살 수 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아에 하나도 없다는 것은 과장이다. 우리가 느낄 수 있다면. 왜냐하면 우리의 기쁨과 슬픔은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니까./128


그렇지. 나를 지배하는 주 감정 속에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한 지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확장시키는 것이 잘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아무리 서러워도 어디 기댈 데가 있으면 눈물은 그치게 돼 있어./142


이런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자식에게.


아빠는 시간이 주는 선물이란 게 있다고 생각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포기하는 것. 생명의 유한함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서로를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돌보기 시작한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품위다. /145


나는 우리 인류가 곁에 있던 것이 사라져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리는 것을 슬퍼하는 능력이 잃지 않았기를 바란다. 우리 인류가 아무런 감동이 없는 세계에서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168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은 쉽지만 방향을 바꿔 지옥에서 올라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름을 붙여서 하고자 하는 바를, 살고자 하는 바를 명백히 하지 않으면 상황은 저절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말이다./227


제일 처음에 인용한 7페지이의 글과 같은 맥락의 글.


"사랑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233


이런 문장을 읽으면...어쩔 수 없이 딸아이를 떠올린다.


드물게 나의 마음이 모순이 없는 순간/248 --너무 근사한 표현이라 기억하고 싶다.


'현실의 다른 측면을 봐봐!(other side) 다른 쪽으로 가봐! 가서 여전히 아름다운 이야기(still beautiful)를 찾아내봐/254


위 128페이지의 글과 일맥상통


나는...현실을 변신의 장소인 것처럼 살고 싶다. 특별한 이야기의 힘을 믿고 우리에게 마법 같은 힘이 있음을 믿고 세상에 기적이 존재함을 믿고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감히 믿으면서 살고 싶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달라질 가능성을 믿어야 자신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의 증거가 되고 싶다. "누가 그래? 내가 예전과 똑같은 사람이라고."/260.


표식해 두었던 문장을 뽑아보니, 역시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특히 아무리 우울해도 100%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 다른 측면을 보라는 말. other side. 정혜윤이 스스로 했던 말을 나에게도 한다.
나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