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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25. 18:47

<나의 해방일지>를 다시 봤다. 염창희를 다시 보기 위해서. 본 방영 때에도 내내 염창희를 주목했다. 염창희에 대해서 뭔가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글쎄. 여기 저기서 매일 마주치는 보통의 사람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모두 개별적 고통과 특별한 이야기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 염창희가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느껴졌다. 적당히 세속적이면서 평범하고 성실한 인간. 이렇게 말하면 매우 평면적인 인물로 여겨지는데 염창희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어떤 위대함 같은 것이 있다. 평범한 사람의 위대함, 이 또한 공허한 수사적 표현으로 쓰이는 단어이긴 한데 염창희의 위대함은 영웅적 행동이나 결단에서 비롯되는 위대함이 아니라 상식을 구현하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울린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군고구마 기계를 전국 편의점 매장에 보급하기 위해 테스트를 하는 날, 염창희는 죽을 병에 걸린 지현아의 전 남자친구 혁수의 병실에 들린다. 공교롭게도 혁수가 숨을 거두기 직전 상황이었고 염창희는 잠시 갈등하다가 혁수의 손을 잡고 차분하게 말한다.
"형 미안해. 괜히 불안하게 해서. 형 나랑 둘이 있자. 내가 있어 줄께....형 겁 먹지 말고, 편하게 가. 나 여기있어."
염창희의 말로 표현하면, 염창희는 '자기가 있을 자리를 기가막히게 알고 미리 가 있는' 사람이다. 그 '있을 자리'는 대개 사람을 떠나보내는 자리이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혁수의 마지막 자리. 그리고 그 마지막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염창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아쉬워하기 보다(물론, 많이 아쉬웠을 테지만), 멋진 인간이라는 평가를 스스로에게 내린다.
"내가 뭐든 입으로 털잖냐, 근데 이건 안 털고 싶다.나란 인간의 묵직함, 나만 기억하는 나만의 멋짐. 말하면 이 묵직함이 흩어질 것 같아서 말하고 싶지가 않다. 영원한 나의 비밀"

"이 말들이 막 쏟아지고 싶어서 혀끝까지 밀려왔는데 밀어 넣게 되는 그 순간, 그 순간부터 어른이 되는거다.
내가 이걸 삼키다니, 자기한테 반하면서. 나 또 반한다."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쉽게 선택할 수 없는(선택하지 않는) 선한 일을 염창희는 영웅적이지 않게 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올 것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 자신이 해야할 선한 일을 선택한다(이런 것을 '선의 평범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평범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스스로 1원 짜리가 아닌 산이 된다.
“나는 1원 짜리가 아니라 산이었던것 같아. 산으로 돌아갈 것 같아.”
마지막 두 회차에서 염창희(를 연기한 이민기)가 크라이막스를 찍었지만, 전반부에서도 염창희는 보통사람들의 정서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싫은 사람에 대한 짜증, 붙임성 있는 사회적 태도,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과 그에 따른 선택들(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태도, 지현아와의 이별, "끼리끼리는 과학이다"라는 말 같은 것). 이런 것들 때문에 염창희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선한 선택이 한 발짝, 한 발짝 어렵게 어렵게 삶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으로 느껴지는 것이다(염미정과 구씨의 대사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염창희에 의해서 구현되는 느낌). 지현아와 이별 장면에서 그가 했던 말. "나는 계속 이렇게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거야"라는 지극히 평범한 말이 삶에 대한 선언처럼 들리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 경험과 선택을 통해 자신에게 도달한(이것이 해방!) 결론이기도 하다.
*나에게 <나의 해방일지>의 명대사는 "나를 추앙해요"가 아니라 "끼리끼리는 과학이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