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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30. 22:46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서 한 호흡에 읽어야 할 책을 너무 오랫동안 띄엄띄엄 읽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관련되는 주제로 논문을 쓸 때 참고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 견고하게 스며있는 '정상가족' 신화를 깨주는 훌륭한 책이다. 오랜만에 좋은 책과 저자를 만났다.

아이에 대한 체벌을 부모와 양육자가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회는 학대에 대해서도 민감성이 떨어진다. 체벌을 해도 된다고 보는 태도가 뿌연 안개처럼 사회에 깔려있는 상황에서 아동학대를 뿌리 뽑을 방법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24)

부모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신체적 체벌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힘의 차이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 불평등함을 인지한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힘과 권력에 따른 불평등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 쉽다(39)

법은 한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가치의 전환과 확산을 이끌어가기도 한다(49)

동반자살...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 예측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끊을 때 자녀를 살해하는 것이다(80)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에 대한 문제제기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개인을 지켜주는 거의 유일한 울타리.....한국사회의 특이한 점은 흔히들 가족주의가 약해지기 마련인 근대화 과정에서 가족주의가 더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근대화 과정 내내 '선 성장, 후 분배'의 논리하에 거의 모든 사회 문제를 가족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166)

경제발전과정에서 노동력, 특히 값싼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했던 국가는 핵가족을 찬양하면서 농촌 자녀의 도시 이주를 장려하고 여성의 노동시장 유입, 산아제한을 골자로 한 가족계획을 장려했다. 그러다가 산업화의 진전으로 농촌의 공동화 및 노령화가 문제가 되고 노인 부양의 필요가 제기되자 이번에는 핵가족을 비판하고 전통적 가족 부양의 윤리를 찬양했던 것이다(170)

사회정책이 가족 단위로 설계되는 방식이 지속되면 가족을 형성치 못한 개인, 가족에게서 충실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개인에게 사회가 또다시 불익을 가하는 셈이다(175)

국가의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해버린 탓에 가족이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서 가장 약한 자인 아이들이 늘 피해자가 된다(176)

가족주의를 떠나서 보편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심리적 분리는 부모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과 싸우고, 달래고, 도망치고, 협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고 어떠면 평생 지속해야 하는 과제이다(190)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개인 사이에서만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심지어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서로 의존적이고 굴욕을 강요하는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바라본다. 국가는 이런 굴욕감에서 개인을 해방시킬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219)

스웨덴이 부모의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것에 대한 논평.

출산율이 회복된 나라들에는 혼외출산을 '정상가족'에 대한 도전이나 일탈로 간주하며 차별하는 배타성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스웨덴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231)

심리학자 폴 블룸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방식의 공감력 향상보다는 되레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덕에 근거해 판단하는 이성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255)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때렸을 때 항의하고 신고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더 약한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인 것이지, 우리가 모두 이웃의 아이를 함께 지키는 대가족 구성원의 마음자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은 아니다(259)

내 혈연이 아니더라도 세대를 이어 인류가 계속 존재하리라는 기대가 사라진다면, 개인의 삶은 유한해도 나보다 더 크고 지속되는 전체에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다면, 그 모든 추구와 삶의 의미도 빛을 잃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미래의 낯선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존재의 의미를 다음 세대에, 아이들에게 빚지고 있다(266)

에필로그가 압권. 마지막 문장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삶은 개인적으로, 해결은 집단적으로' 

cool trust 시원하고 개방된 신뢰관계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동아시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