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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20. 12:53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이 있는 사람은 그 작은 길을 넓히고 확장해 가며 앞으로 나간다."

이 책의 저자, 전영애에 대한 느낌을 압축해서 표현하면 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 <건축탐구 집>에서 여백서원을 소개할 때 받은 그에 대한 느낌은 현세에 살면서 참 수도자 같구나, 하는 것이었다. 3,200평 대지에 사적인 공간이 한 1평이나 되려나. 낡은 책상과 이부자리가 놓여있는 그 공간에서 마저 전영애는 읽고 쓴다. 괴테를 기리는 여백서원은 독문학-괴테 전공자로서 그가 '괴테의 집'과 같은 공간을 그리며,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지금도 만들고 있는) 공간이다.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여백서원의 오솔길에 놓인 괴테의 싯구를 소개하며 그와 관련된 전영애의 삶에 대한 소회를 담은 글이다. 역시 산문은 나이 지긋하게 인생을 잘 살아온 사람의 글이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나의 주제에 전 인생을 쏟는 사람, 그 과정에서 얻은 성찰의 결과를, 물리적 재산을,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나누는 사람. 그녀의 삶이 절대 녹녹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신기하다. 또한 전영애의 삶을 보면 우연이지만(절대 우연일 수 없는) 행운(?)이 곳곳에 있다. 어떻게 사람들이 저럴 수 있나? 어떻게 그 귀한 괴테의 <파우스트> 원본을 기차안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줄 수가 있을까. 어떻게 낯선 동양인 여자에게 자신의 방 한칸을 흔쾌히 나눠줄 수 있을까. 어떤 것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파장을 일으킨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믿음. 고단하고, 힘든 삶을 살았음에도 자신이 마음에 품은 것을 잊지 않고 급하지 않게 그저 앞으로 나간 사람. 괴테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이 책은 전적으로 전영애의 삶의 기록이다. 그렇게 읽었다. 
p.s 제목만 보고는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책이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동화책 같은 제목. 읽고 나면 다시 보인다. 괴테의 싯구이만, 역시 전영애의 삶을 압축해 놓은 글로.
세상은 험하고, 때로 잔인합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그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습니다. 그 어떤 호도로 없습니다. 적확한데, 때로 혹독하도록 적나라합니다. 나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앉고 설지, 들고 날지, 걸어걸지 멈출지는 내가 정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습니다. 정확한 인식만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바른 인식은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험함, 어려움에 대해서야 굳이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살다보면 다 알게 됩니다. 알 수밖에 없습니다./78
꿈을....일상의 삶 속으로 적절히 조제해넣을 수 있으면 좋겠지요. 꿈과는 까마득히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꿈을 실현하겠다고 물불 안 가려선 무리가 따르는 법입니다. 놓은 꿈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을까요. 삶에다, 마치 조제약에가 한 가지를 첨가하듯 꿈을,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섞어가면, 삶이 견디기 낫고 사람도 반듯해지고 꿈도 단단해지겠지요./112
꿈을 가지라는 그런 추상적인 말 대신, 뜻을 가지면 사람이 어떤 높이와 넓이에 이를 수 있는지, 또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물 예 하나를 젊은이들을 위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해 해왔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일을 더 벌일 처지는 아니라, 그런 한 인물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음의 모델을 만들어, 서원 한 쪽에다 둘 생각으로 밑그림을 그려두었습니다./144
돌아보니 천치가, 세상에서 한 가지는 야무지게 해낸 일이 있다. 좋은 도서관들에 제 자리를 만든 일이다. 뭰헨에도, 베를린에도, 바이마르에도, 케임브리지에도, 잠시 들른 더블린과 시카고에까지 G자 어름쯤의 서가-근년에 괴테에 몰두한 탓이다-가까운 창가, 한 구루쯤 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곳에 내 자리가 있다. 아니, 세계 내게 도서관 내 자리의 망(網)이다. 세상 어딘가에, 곳곳에,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리로 나를 찾아올 만큼, 때로는 우편물이 그리고 올 만큼의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부유함인지. 그런데 도서관에서야 어딜 가든지 그냥 앉아만 있으면 내 자기가 되니 쉬웠다. 달리 지상 어디에 그리 쉽게 한 자기가 생기겠는가. 세상사 서툰 사람이 세상에서 야무지게 해낸 일도 한가지는 있는 것이다./191.
세상 무엇이든 더이상 놀랍지 않을 때, 그 무감각은, 생물학적 연령이 어떻든 이미 실질적인 삶이 종말일지도 모릅니다./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