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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13. 01:40
 "...내 몸이 원하는 것은 길들어진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썼다. <색, 계>를 직접 언급하며 쓴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은 <색, 계>가 보여주는 섹스의 핵심을 간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색, 계>의 베드신을 보고 나서 그게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길들여진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것. <색, 계>에서의 섹스는 그거였다.

섹스는 몸과 몸의 만남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종종 몸 이외의 것들이 끼어든다. 만족을 나타내는 제스쳐와 가장된 신음과 도취와 따뜻한 어루만짐까지. 이들은 모두 몸과 몸이 만나는 원초적인 차원에 나타나는 관습의 흔적들이다. <색, 계>의 섹스는 관습이 전적으로 배제된, 말하자면 '계'가 사라지고 '색'만이 오롯이 존재하는 섹스이다. 물론, 첫번째 섹스에서 리(양조위)는  왕치아즈(탕웨이)에 대한 지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마지막 섹스에서 이런 관습적 지배는 사라진다. 몸과 몸이 만나서 서로의 몸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소진해 버리는 것, 몸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이 오직 몸을 몸으로만 표현하는 것. 이것이 내가 본 <색, 계>의 섹스이다.

어쩌면 그건 마음이 없이도 가능할지 모른다. 물론, 사소한 끌림이나 의도가 몸과 몸이 만나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다. <색, 계>에서 리와 왕치아즈도 그랬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몸의 움직임은 마음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사랑없는 섹스가 가능하니 마니하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몸과 마음이 별개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리와 탕웨이의 사랑(이라기 보다 사랑이 시작되는)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절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관습이 들어설 틈이 없는) 섹스는 결국, 그들의 마음을 동요케 한다. 처절하리 만큼 몸을 몸으로만 느끼는 것, 그 결과 생긴 몸에 대한 무의식적 신뢰가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양조위...연민을 느끼게 하는 그 독특한 눈빛마저 섹스신에서는 몸에 가린다. 탁월한 몸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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