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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18. 17:16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2번째 권.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와 기조는 같다. 같은 기조의 책을 두 권으로 나누어서 제목을 달리한 느낌이지만,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가 조금 더 개인에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은 있다. 꾹꾹 눌러쓴 듯한 문장들, 문장의 힘은 여전히 살아있다.

삶이란 나의 내부가 외부로 향하는(투사)과정이다. 나를 드러내는 것, 외면하는 말 그대로 개인이 타인과 사회와 새로운 세계(面)를 만들어가는 것이다.....인생은 자신이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해결은 자기 분석, 직면, 책임 세 가지다.(55).

"남들 보기에?" 인생 진리 중 하나는 남들은 나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자신과의 투쟁이다....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62).

책을 읽다보면, 현재의 상황을 반영해서 밑줄을 긋는 부분도 달라진다. 내가 경험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남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가 고민인 요즘 자기 분석, 직면, 책임은 고민하는 바를 올바른 방향으로 풀 수 있도록 안내한다. 남들은 나를 보지 않는다는 말도 여러 버전으로 들어온 말이지만 위안이 된다. 이런, 판타지 없는 시각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이를 사랑한다. 인생의 절정은 성별, 계급, 나이, 심지어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상호 성장을 위해 자잘한 것(권력, 돈, 명예) 혹은 자기가 알던 유일한 세계를 포기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105).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 항상 이런 관계를 꿈꿔왔다. 이제는 누군가에 의해 내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도 있어야 할 나이이다.

내게 인생의 절정, 결정적 순간은 패배 후의 복기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혼돈과 의문의 시간에 바로 복기할 수 있다면! 그 깨달음의 절실함과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까.....잘못된 복기는 트라우마, 집착, 후회를 가져온다. 지나간 일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117).

이런 걸 성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겪어온 바에 의하면, 제일 견디기 힘든 사람이 성찰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이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자기행동의 의미를 모르므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개념이 없다. 이 방면의 대사 안드레아 드워킨이 말했다. "의미를 모르면 고통도 없다."(183) 딱, 이런 사람이다. 구체적인 인물이 떠오른다. 밑 줄 친 말들은 대개 그에 대한 분석 혹은 해석에 가까운 말이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를 놓아야 할 때다.

"인간이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과거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변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사람이 꽃보다 예쁠 때는 이때뿐이다.(126).

이런 말은 많은 위로가 된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에서 나에게 집중하도록, 나를 돌보도록 이끈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권력자다. 자기 충족적 삶은 최고로 힘을 지닌 상태다. 인간은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권력감이 없으면 외로운데, 자기 몰두형 인간은 권력에 무심하다. 사실, 이 행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154).

전적으로 동감!

법을 적용하는 판관도 아닌데 개념이 그리 중요한가요? 원래 개념을 규정하는 것은 권력 아닙니까? 언어는 권력 투쟁의 산물이고 수시로 변합니다. 모든 지식은 임시적이고 임의적이죠.(190).

권력은 비겁해서 넘어뜨릴 수 있는 사람만 건드리는 법이다.(210).

약자는 자기 언어가 없는 사람이다....약자의 무기는 단 하나, 자신을 신뢰하고 기존 언어를 의심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중얼거림과 산만함,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새롭다.(231).

어떻게 억압받는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는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문화는 무엇인지.(233).

언제나 인간 문제는 '팩트'여부가 아니라, '팩트'를 만들어내는 권력에 달려 있다.(241).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 생각과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247).

정희진을 글을 읽다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곱씹을 문장을 자주 만난다. 새로운 말이라기 보다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정확하게 짚어서 핵심체크를 해주는 표현들이다. 그런 표현이 가능한 것은 마지막 문장이 가리키는 것 처럼 꾸준히, 지속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생각과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글쓰기의 힘이며 나를 알기 위한 작업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는 개인적 차원의 진술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사유없이 내 경험의 실체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으며, 내 생각과 고통에 대한 진술도 '그들'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렇게 밖에 안된다. 두 권의 책은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읽고 쓰는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안내하는 책이다.

 

 

정희진,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교양인, 2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