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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엄마는 딸에게 미안해해야 하나

다큐멘터리 영화 을 소개하면서 정희진은 일하는 엄마가 자녀에게 미안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언급했다. 80년대 사회운동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래서 딸을 보살피지 못했던 여성의 상황을 자신의 처지와 관련지으면서 한 말이다. 정희진은 사과를 요구하는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저는 사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엄마라는 성역할을 못해서 사과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인간으로서 아이를 낳아서 책임을 못 지어서 사과를 해야 하는 건지..., 제 입장에서는 저도 고통스럽고 힘들게 살았거든요. 저는 타인에게 사과를 자주 하는 편인데 왠지 엄마 역할에 대한 사과를 하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이 작품의 엄마처럼 양육하고 공부하고 경제활동을 어떻게 잘할..

with others 2026.07.29

시간의 감촉

은희경에게 품는 기대가 있다. 그가 쓴 거의 모든 작품을 챙겨 읽으며 생긴 모종의 신뢰감 같은 것이겠다. 여성들의 섬세한 감정을 은희경만큼 잘 잡아내는 작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흐릿하고 모호한 감정의 실체를 정확하게 잡아내면서 균형잡힌 글을 쓰는 작가, 은희경을 좋아한다.처음에는 이라는 제목이 잘 와닿지 않았다. 다 읽고나니 이만한 제목이 없는 것 같다. 작가는 시간과 함께 나이들어 가는 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으나, 이 몸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관계에 대한 문제, 나는 그가 쓴 대부분의 작품 주제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몸은 시간의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늙음을 가장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준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작동하는 범위와 속도에 따라 생활의 양태가 재편된다. 나이..

between pages 2026.07.19

은주의 영화

유튜브 알고리즘에 공선옥이 떴다. 그녀의 집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것이 「은주의 영화」였다. 출간된 지 꽤 지난 책을 소개하는 것을 보니 오래된 영상물이었다. 사놓고 책꽂이에 그냥 꽂아둔 책. 이제 때가 됐다는 것인가 싶어 읽기 시작했다. 역시 표제작이 제일 좋다. 분량도 제일 길고, 문장도 좋았다. 이젠 이런 문장을 쓰는 작가가 없다. 지금의 젊은 작가들이 지금 이 시대를 그려내는 언어도 귀하지만, 공선옥을 비롯해 '그 시대'를 관통한 작가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구사하는) 언어가 분명히 있다. 여전히 그런 글을 쓰느냐고, 지겹고 낡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나도 이따금) 어쩌겠는가. 여전히 들여다보고 아파하면서 해석해야 할 것이 남아있다면 계속 쓸 수 밖에. 에서 공선옥은 「은주의 ..

between pages 2026.07.07

모과

단편영화 를 봤다. 막노동을 하는 수건은 시인지망생이고 희지는 단역배우이다. 그들에게는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성취물이랄 게 없다. 중년에, 중년의 나이에 '여전히' 시인(이 아닌) 지망생인 남자와 '아직도'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여자. 월세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는 그들의 사랑은 그러나 점잖고 나긋하다. 우연히 만난 동창에게 희지는 수건을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수건은 살짝 머뭇거리다가 자신을 시인지망생이라고 정정한다. TV드라마였다면, 그 장면을 희지가 허세를 부리는 장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희지가 수건을 진짜 시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도 배우지망생이 아니라 배우에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봤다. 결국 시인 지망생은 시인이 되지..

film 2026.06.08

불필요한 여자

첫 장을 읽고 이 책이 각별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칠십세 여성이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책을 번역한다는 설정부터가 흥미로웠다. 알리야의 일상은 책을 읽고 번역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무려 50년간 그녀는 37권을 번역을 하고, 번역물을 상자에 담아 쌓아둔다. '불피요한 여자'가 수행하는 '불필요한 일'이다. 이것이 그녀의 삶에 무슨 의미(이 단어 싫어하는데,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다)인가?더보기나는 이미 오래전에 글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에 나를 맡겼다.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이다. 나는 그 안에서 놀고, 요새와 성을 쌓고,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놀이터 바깥의 세상이다. 나는 눈 앞의 세상에 온순하게 그러나 관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적응해왔다. 내 안의 책 세계에 큰 불편없..

between pages 2026.05.17

자기만의 집

가끔 옛날 작가들(?)의 책을 읽는다.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고, 눈에 띄면 챙겨두었다가 마음이 동하면 읽는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오랜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은 행위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도 그런 차원에서 읽기 시작했다.전경린은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의 글은 나에게 지나치게 뜨겁고 강렬했다. 그나마 을 제대로 읽은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윤진(미흔)이 지었던 표정-불행하고 자유로운-에 이끌려 두 번 읽은 기억이 있다. . 제목이 이게 뭐야, 도 아니고.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읽기 시작했다.이 답답함은 뭐지? 문장은 왜 이렇게 버석거리고 거칠지?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왜 또 이렇게 관념적인 것인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인물의 캐릭터와 무관하게 그대로 뱉어내고 있는..

between pages 2026.03.15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이 책을 읽고 이런 질문을 했다. 'Vita Activa' 충분히 활동적인 삶을 산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의 힘을 확인하고 그 힘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삶, 그것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말하는 '활동적인 삶'이다. 내가 늘 꿈꿔온 삶.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답을 위해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적어보자1.읽고 쓰기, 기쁘게도 요즘, 책을 잘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독서는 늘 하는 일인데 뭔가 한 단계 고양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독서에도 단계라는 것이 있다면, 전 보다 조금 더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기쁘다2.혼자있는 시간, 산책을 하거나 혼술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러나 여전히 '시간'을 어떤 활동으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between pages 2026.01.23

2025, 마음의 양식

1.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2. 각각의 계절, 권여선 3. 누구도 울지 않는 밤, 김이설4. 모순, 양귀자5. 연연세세, 황정은 6. 디디의 우산, 황정은 7. 위대한 그의 빛, 심윤경8. 혼 모노, 성해나9. 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10. 바깥은 여름, 김애란11.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 안도현12. 시선으로 부터, 정세랑 13. 붕대감기, 윤이형 14. 2025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겨울정원, 이주란 외15. 페른베, 신유진 16. 풀베개, 나쓰메 소세키17. 속죄, 이언 매큐언18. 모스크바의 신사, 에미오 토울스19.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20. 외투,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21.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22. 증언들, 마거릿 애..

between pages 2025.12.30

꿈 이야기

꿈을 꾸었다. 꿈에 엄마가 나왔고(얼굴이 보였던가 말았던가, 그러나 존재는 분명히 느껴졌다) 나는 하던대로 엄마에게 퉁명스럽고 모질게 무슨 말을 했다. 뭐에 대해선지는 기억에 없지만 나의 태도는 불손했다. 꿈 속인데도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게 없구나, 꿈을 꾸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가 나오다니. 아마도 읽고 있는 책 때문인 것 같다.이 책(페른베/신유진)은 묘하게 매혹적이다. 한정원이나 목정원의 글처럼 느릿느릿하고 그래서 슬픈 정조가 깔려있다. 주인공 희수는 어머니를 벗어나 지방의 소도시에서 혼자 산다. 희수의 슬픔과 우울이 혼로 자신을 낳고 '지킨' 어머니에 기인하고 있다고 짐작되는 부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딱지가 안 생기는 상처' 같은 것을 가지고 사는 희수는 엄마를 '동이 씨', 이..

diary 2025.12.29

어떤 동사의 멸종

뭐라도 꼭 메모를 해 놓고 싶은 책이다. 밑줄을 친 부분도 없는데 책 전체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평처럼 읽는 내내 이 작가는 '찐'이다, 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 '쓰다'에서 그 생각의 정점을 찍었다.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小史를 기록한 부분인데 글쓰기 작법이나 태도의 교본으로 읽어도 훌륭한 부분이다.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 각 영역에서 노동하는 사람을 보여주는 방식대로 저자는 '쓰는' 행위를 하는 한승태를 보여준다. 한 사람의 삶을 엿보는 재미가 물론 있었으나, 인공지능이 가져올 쓰기 노동의 변화와 위협, 나아가 우리 삶 전체를 위협하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한승태는 어떤 낙관도 하지 않는다. 세상은 오늘도 날카로운 한기로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살아님기 위해 우리..

between pages 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