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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11. 16:42

감독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화이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현장실습을 나간 소희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과 소희의 사건(?)을 쫒는 유진을 통해 우리 모두 소희의 죽음에 연루되었다고 말하는 부분. 정주리 감독은 직설화법으로 묻는다. 너는 소희의 죽음에서 자유롭냐고.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고.
소희의 이야기를 다룬 전반부에서는 특성화고의 현장실습이 어떻게 한 여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를 아무런 필터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오직 회사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콜센터의 상담원들. '고객'의 폭력적인 언사로 상처받는 마음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그런 상담원들을 관리하며 역시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는 '팀장'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죽을 것 같다, 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달라진 소희의 모습은 더 아팠다. 특히, 소희가 죽은 아들의 휴대폰을 정지해 달라는 고객에게 실적을 올리기 위해 끈질기게 약정을 유지해 달라고 하는 장면에서 그랬다. 통화 종료음을 듣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싶은 표정을 짓는 소희의 얼굴은 이미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유진은 자살이 분명한 소희의 사건을 종결짓지 못한다. 회사의 우두머리와 소희의 담임과 교감과 교육청의 실무자와 장학사와 경찰 선배와 죽은 팀장의 아내와 소희의 부모를 만난다. 유진을 통해서 감독은 말한다. 너희들이 실적과 취업율과 평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제대로' 주어진 일을 했다면 소희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무도 소희를 죽이지 않았으나, 누구도 소희의 죽음에 책임이 없지 않다.
수사를 종결하라는 선배 경찰을 향해 유진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물불 안가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일하고 싶다'. 나는 그럴 수 있나. 실적, 취업률, 평가 이런 단어가 낯설지 않을 만큼 나 또한 눈에 보이는 정량적 수치가 성과를 가늠하는 판에서 오래 일했다. 회의가 들 때마다 사는 것이 원래 이렇게 구차하고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무해가며 한쪽 눈을 감았다. 사는 건 원래 그렇지 않고, 그렇게 살아서 그렇게 된 것인데도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용기가 분명히 부족하다. 유진과 장학사의 대화 중 장학사의 대사는 바로 나의 것이기도 했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일개 장학사가 뭘 할 수 있겠냐, 교육부에 가봐라 뭐 그런 뉘앙스의 대사. 그리고 '적당히 좀 하자'는 말. 그렇게 말하는 장학사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귀찮은 거다. 왜 나한테까지 와서 이러느냐 뭐, 그런 마음. 이 영화에서 소희를 죽음으로 내 몬 '공범자'들은 일을 안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면에서 '능력자'로 인정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 그저 직업이니까, 주어진 것이니까 일을 했다. 제대로 일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거나 외면했거나. 나 또한. 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교사와 교감과 장학사와 선배 경찰과 죽은 팀장의 아내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니까 나도 공범자라는 말이다.
어제 영화를 본 후 바로 해두었던 메모.
'교사가 자신을 일을 제대로 했다면, 장학사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했다면, 경찰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했다면,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제대로 살폈다면, 회사가 범만 제대로 지켰어도. 누구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 진짜 물불 안가리고 내 생각대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