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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7. 11:58

이 책을 다 읽고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 참 사랑스럽다'였다. 무엇이?

일단,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모두 좋았다. 소라, 나나, 나기, 그리고 애자와 순자까지. 이들은 세상의 기준에 따르면 저마다의 상처와 저마다와 고충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세상에 휩쓸려 자신을 해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애자를 제외하고...그런데 애자의 선택도 자신을 해치는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잠잠한 태도로 그들은 서로를 지키며 다독거린다. 그 잠잠함은 소라, 나나, 나기가 삶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단호함이기도 한데, 이 단호함은 과격하거나 돌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하다.

어쩌면 세 주인공들의 따뜻함의 근원은 순자인지도 모르겠다. 순자는 가장 평범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세상의 표준과는 거리가 먼, 예민한 주인공들에게 평범으로 상징되는 보통의 삶을 한자락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소라, 나나, 나기, 순자가 만두를 빚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난다. 이들에게 이런 세속의 행복이 이정도는 가능하구나, 다행이다,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순자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애자이다. 아름답고 모호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는,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세계(12) 사는 인물. 남편의 죽음과 동시에 삶을 놓아버린 인물. 딸들에게 엄마라고 불리지 않고 '애자'라고 불리는 인물. 가장 소설적 인물. 등장인물 모두가 저마다의 빛깔로 저마다의 생을 살아가고 있어, 모두에게 고루 눈길이 간다. 심지어 모세와 나기의 그새끼에게 까지.

이 작품이 사랑스럽게 느껴진 또 다른 이유는 '계속해보겠습니다'로 표현되는 인물들의 태도 때문이다. 나나의 章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계속해보겠습니다'가 자주 등장한다. 과거 슬픔에 관한 이야기, 고통에 대한 이야기...끊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로 이해되다가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살아보겠습니다, 로 읽힌다. 마지막 문장도 계속해보겠습니다, 로 끝이 나는데 안심이 되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다. 하찮고, 덧없고, 무의미해도 계속해보겠습니다. 위로 같기도 하고, 다짐 같기도 하다.

만두를 빚는 장면은 오래 남을 것 같다. 특히 나나가 만두 맛을 표현하는 문장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에게 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절대로 한마디로 표현될 수 없는 복잡하고 뭐가뭔지 모를 엉망진창인 감정. 여기서 엉망진창은 뭔가 귀여운 투정같은 감정으로 읽혔다.  

맛있어. 정말로 맛있어. 그립고, 즐겁고 애틋하고 두렵고 외롭고 미안하고 기쁜 마음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입니다.(156).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창비,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