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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7. 00:05

한 번 읽고, 또 이어서 한 번 더 읽었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기는 처음이다. 한영진의 이야기를 다룬 <하고 싶은 말>에 조금 감정이입이 되었다. 포스트 잇이 붙혀진 곳도 <하고 싶은 말>이다. 엄마의 사물들과 엄마의 짜증을 감당했다(50). 엄마의 사물들...'엄마의 짜증'보다는 '엄마의 사물들'에 눈이 콕 박혔다.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거기서 오는 답답함을 작가가 정확하게 안다고 느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생각을 못했던 것인데, 두번째 <무명>을 다 읽어갈 무렵 한영진과 한세진의 엄마가 아니라, 순자로 불렸던 이순일 개인의 이야기를 작가가 하는구나 느꼈다. 한세진과 한영진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그 숱하고 징그러운 이야기, 이야기로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이야기(133). 그러나 <하고 싶은 말>에 비해 그냥 타인의 이야기로 읽혔다. 나는 알지 못하는 (엄마의) 이야기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러다가 마지막 구절에서 울고 말았다. 역시 한영진이 등장하는 장면.

그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러나 한영진이 끝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용서 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 아이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순자에게도 그것이 있으니까.(142). 

이 문장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마음이길래 이 문장에서 눈물을 흘린 것일까. 내 마음인데도 내가 잘 모르겠다. 책을 두번 읽게 만든 것이 이것 때문일까. 현재의 상황과 맞물려 지극히 주관적으로 읽어버린 것일까. 한영진의 이야기에 독자들이 적잖이 반응을 보인다고 어딘가에서 읽었다. 이해 받는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해해. 알고 있어.

작가의 말에서 이 이야기를 가족이야기로 읽을까, 궁금하다고 썼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분위기와 정조는 다르지만 안토니아스 라인이 떠오른다.

<연년세세>, 황정은, 창비, 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