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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2. 16:33

이 책은....,소설로 보자면, 첫번째 글 <d>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보다 좋았다. 작년에 읽다가 중단하고 <d>를 다시 읽었는데 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와 작품에 대한 평단의 해석이 없었다면(접하지 않았다면) 더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저렇게 말을 보태기가 어려운 작품이지만, 이 글에서 단연 마음을 잡아 끈 문장은 d의 주인집 할머니 김귀자의 독백이다.

조롱박, 아직 어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연한 박이.....희고도 파랗게 그것이 어찌나 예뻤는지 손으로 쥐었다가 땄지. 내가 그것을 뚝 땄을 적에는 반드시 먹으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게 다만 탐스럽게 예뻐서, 십여개 열린 것 중에 한개를 쥐고 넝쿨에서 뚝 떼어낸 거야. 그랬더니 그 집 여편네가 벼락같이 문을 열고 나와서 우리 박을 따지 말라고 야 이 도둑년, 박 도둑년, 아주 그러더니 내 손에 든 박을 그년이 아주 싹 빼앗아 갔지. 나하고 똑, 같은 나이를 먹은 것 같은 그년이 아주 말쑥한 얼굴과 머리를 하고 박 도둑년....그 때에....대낮에 내가 너무 야속하고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어. 그때 내가 매우 놀라며 깨달았지. 내가 우는구나 부끄러운 것을 다 느끼는구나 살아서 이렇게 있구나. 그러자 이번엔 그게 기쁘고 막막해 눈물이 났다. 내가 살아야 겠다 이왕에 여기까지 살았으니 끝내 살아보자는 뚜렷한 맴이 들었어.... 그 확고하고도 뚜렷한 맴을 먹게 된 것이 부끄럼 덕이었으니 그것이 나를 살렸지.(31).

죽고 싶은 상황에서, 혹은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상황에서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의 어떤 작용, 그것을 작가가 말하는 '혁명'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그러나 하나의 장이 끝나고 또 다른 장이 시작되려면 사소해보여도 '나'에게는 혁명적인 전환의 시점이 있어야 한다. d에게 오디오의 진공관 같은, 김귀자 노인에게 부끄러움 같은 것이. 이런 구절에 자꾸 마음이 가 닿는 것은 지금 현재 내 마음 상태의 반영일 테다. 나는 어떻게 혁명을 할 수 있으려나. 나에게 조롱박이 되어 줄 것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는 우리가 기억할 만한 사건이 일어난 연대와 날짜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d>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지만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는 의도적이라 느껴질 만큼 빈번하게 시대적 상황과 맞딱드린다.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그래서 글 중 화자의 생각과 느낌을 따라가기가 수월했다. 또 그래서 이 글은 뭔가, 소설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물론 그 메세지는 나의 견해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도 읽는 내내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불편했을까, 생각해 보니 계몽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꼭, 소설이어야 했을까,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의 상상력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혹은 최소화하면서 굳이 소설이라는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내가 최근 소설의 트랜드를 몰라서 그런가. 작년에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에 오른 소설이라는데, 독자들이 열광한 소설이라는데....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메세지 이면을 읽어 내는데 내가 실패한 것일까? 동료 소설가들과 여러 층위의 독자들로 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책이라서 나의 느낌을 자꾸 의심하게 된다. 그러지 말자. 여러가지 의미로 불편한 책이 되어 버렸다.

 

 

 

 

<디디의 우산>, 황정은, 창비,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