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좋은 것이기 위해서"(36)
<아무튼, 메모>에서 한 문장을 꼽으라면 단연, 저 문장이다. 계속 곱씹게 되는 문장이다. 단지, 좋은 의미를 가진 문장이어서가 아니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진정으로 저 문장이 가리키는 바대로 살기를 원할까, 싶은 생각에서이다. 옛날 같았으면, 저 문장에 밑줄 긋고 아무 의심없이 그렇지, 그렇지 했을 것이다. 지금은? 나는 이미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선의로 한 행동이 꼭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며, 호의를 베풀다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한 좋은 행동이 내게 손해가 되면 어떻하지, 하는 약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저 문장을 받아들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저 문장을 삶에서 구현하려면 의지와 결심이 필요하다.
나는 왜 저 자연스러운 문장을 앞에 두고 이렇게까지 비장한 것인가? <아무튼, 메모>를 읽으며 정혜윤은 역시 또, 이렇게 이상적이구나, 생각했다. 약간 뒤틀린 마음, 나는 불안한 것이다. 저 문장을 받아들였을 때 놓치게 될 것들이. 그런데 놓치게 될 것들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없.다.
저 문장이 나를 멈춰 세운 건, 모종의 신호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더는 어긋난 길로 가면서 불안해 하지 말라는. 원래 삶은 저런 것이라는. '메모'라는 주제를 앞에 두고 정혜윤은 결국 또 '좋은 삶'을 이야기 하고, 나는 다시 설득당한다.
끝까지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개인의 가능성이 바로 꿈꾸는 자의 자유다.(89)
꿈 얘기 하는 거 매우 싫어하지만,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개인의 가능성', 이 문장에는 또 밑줄을 그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타협하지 않고, 기쁘게 이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86)
무심코, 무의식으로 하는 행동이 좋은 것이기 위해 나는 읽고, 쓴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나를 돌보는 방식이며 나를 나로 부터 멀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기쁘게 이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방법, 그것도 아마 읽고, 쓰는 행위의 어느 지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씩 구체화시켜 보기로.
<아무튼, 메모>, 정혜윤, 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