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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7. 16:46

코로나 발생 이후에 이 불편한 상황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어찌보면 정혜윤의 「앞으로 올 사랑」도 이 범주에 속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책과 대별되는 점은 단순히 현상에 대한 진단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향후 우리 삶이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는지 안내한다는 점에 있다. '앞으로 올 사랑'이라는 제목 하에 저자는 인간과 자연과 동물이 함께 공생하는 삶을 제안한다.

「앞으로 올 사랑」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10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서 정혜윤은 일관되게 지구에서 생명있는 것들이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 삶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말한다. 첫번째, 좋아하는 이야기(미래인지 감수성)에서는 '서로의 고통을 몸으로 아는 것은 사랑과 유대의 기초 중의 기초, 근본 중의 근본'(54)이라고 하면서 어둡고 슬픈 일에 대해 안쓰러움과 연민을 느끼고 가슴아파 하는 것이 앎의 변화를 낳는 일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 감수성을 동물에게로 확장할 것을 권고한다. 두번째, 쓴 맛을 본 뒤 결실을 맺는 이야기(무엇을 할 힘과 무엇을 하지 않을 힘)에서는 나의 삶과 타인의 삶과 동물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전제된다면, 일상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일상적인 식습관이나 소비습관을 바꾸는'(76) 행위 같은 것. 이는 매우 사소한 것 처럼 보이지만, 오랜 습관을 버려야만 가능한 행위이기 때문에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 힘든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해내면서' 삶의 해방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 이야기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마무리 문장이 압권이다.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 힘과 무엇을 하지 않을 힘이 있다. 이 둘을 합하면 능력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의 관계를 바꾸는 것을 변신이라고 부른다.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 사이의 균형을 평화라고 부른다. 이 균형을 잡으면서 우리는 자기 삶의 주체가 된다. 이렇게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게 된다".(77).

세번째, 오랫동안 열망하던 것을 손에 넣는 이야기(그녀는 그녀 삶의 예언자가 되었다)는 레이첼 카슨의 이야기이다. 정혜윤은 레이첼 카슨을 신비로운 꿈은 꾸는 사람, 제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 그 일을 하는 사람(87)으로 설명한다. 레이첼 카슨은 생명과 관련된 일을 찾아 이 일을 환경과 관련된 문제로 연결하여 환경운동가들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침묵의 봄」 을 완성한다. 그리하여 위험에 처했을 때 두려움 없이 용기를 내고 사랑을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준 레이첼 카슨의 글쓰기는 무슨 일인가를 일어나게 하는 매개체(88)가 된다. 네번째, 불행한 결말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당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파악해 보라고 제안한다)에서는 미셀 우엘벡의 「세로토닌」의 주인공 플로랑클로드 라브루스트를 통해 끝까지 함께 할 사람이 있는지,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게 있는지, 상황과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관계가 있는지, 를 질문한다. 다섯번째, 역경을 딛고 행복한 결론에 이르는 사랑 이야기(왜 상처의 말을 들어야 하나요?)에서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네번째 이야기가 질문이라면 다섯번째 이야기는 일종의 해답이다. 그 답을 정혜윤의 언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노트에 기록한 단어들을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나쁜 일은 나쁜 일이고 선한 일은 선한 일이라고 말해줘야 할 것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해줘야 할 것이다. 나쁜 일을 하면서 고통을 느끼고 선하고 옳은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도록 재교육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재교육된 단어 위에 미래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재교육된 욕망 위에 새로운 인간 가능성이 펼쳐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167)

여섯번째, 날카로운 통찰로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거울깨기)는 조류독감-사스-코로나로 이어지는 과정을 추적하고 이 불행한 고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중심주의적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을 보르헤스를 인용하여 인간만을 비추는 거울을 깼을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일곱번째, 골려먹는 이야기(다른 누구도 더는 건드리지 마라)에서는 '동물권'이라 이름 붙일만한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여덟번째, 농담이든 뭐든 재미있는 이야기(이봐, 주위를 좀 보라니까!)에서는 영화 <에일리언>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인간중심주의적 시각)에 제동을 건다. 아홉번째, 좋아하는 이야기(사랑하는 ○○과 함께 살기)에서는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에 나오는 '바위 아래 개 두 마리' 이야기를 소개한다. 토니오의 집에 초대받아 간 안토닌이 따뜻한 환대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특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정혜윤은 이런 미세한 장면에 흐르는 사람의 마음을 포착하고 그 마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확장하는 데 매우 탁월하다.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정혜윤의 낙관성이 이런 태도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울지? 그제야 나는 안토닌이 두 세트의 나이프와 유리잔을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식후의 포도주의 대화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느끼게 된다. 눈물은 외로운 계곡에 외롭게 사는 소몰이꾼이라는 삶의 '조건'이 이끌어낸 거의 무의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토니오도 나와 같은 것을 보았다. 토니오도 안토닌이 살아온 '시간'과 그의 삶의 '조건'을 봤다. 혼자서 대충 때운 수없이 많은 식사를 봤고, 대화 상대 없이 혼자 일하고 혼자 잠들던 많은 시간을 봤다. 그의 삶이 그에게 준 쓰라림을 봤다. 그 삶이 어떤 것이었을지 이해했다. 그리고 그의 노동과 외로움을 깊이 존중했다. 토니오도 울었다. 이렇게 해서 공간은 시간이 되었다.(254).

이렇듯 상대의 슬픔과 외로움을 헤아리는 마음을 피난처로 삼는 것, 정혜윤은 이것을 앞으로 올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비로소 열번째, 관대한 마음으로 모험을 행하는 자의 이야기(오늘의 가장 좋은 시도와 내일의 가장 좋은 시도 사이에서)에서 '잘자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인간 조건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계속 가혹할 것이지만, 이 위험한 세상에서 애쓰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하면서 버티는 것, 그것을 피난처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인사로 잘자요, 를 전한다. 

"잘 자요!"

"'잘 자요'는 무슨 뜻인가요?"

"'잘 자요'는 오늘의 가장 좋은 시도와 내일의 가장 좋은 시도 사이에서 잠드는 거예요"(286)

환경과 관련된 책을 따로 읽지 않았다. 머리로 알고 있으나 실천에 따르는 불편함 때문에 멀리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재미도 없을 것 같았고. 이 책은 그 어떤 강요도 없이 마음을 만지고, 움직이게 한다. 정혜윤의 다른 책들에 비해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장마다 소개되는 책과 그에 대한 성찰과 독창적인 표현들은 마음을 잡아 끌기에 충분하다. 정혜윤의 다른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갖게되는 궁금증, 어떻게 하면 이렇게 낙관적일 수 있을까? 아홉번째 이야기 안토닌과 토니오의 이야기가 그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