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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21. 00:40
1.
아빠는 좋은 계절에 돌아가셨다. 아직은 제사를 지낼 때 농담같은 거 별로 하지 않는다. 제사가 원래, 옛 이야기하며 웃는 날인데, 우리에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이다. 어른들은 좀 다르다. 나이가 들면 모든 감정의 기저에는 쓸쓸함이 자리하는 것 같다. 슬픔도 그저 쓸쓸함일 뿐이다. 쓸쓸함을 배경으로 어른들은 내내 옛날이야기를 한다. 어려서 부터 나는 제사 때 마다 영화로웠던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어른들을 보면서 자랐다. 어른들에게 제사는 그 즐거움을 가장 편하게 만끽하는 날이다. 자라는 사이 어느새 어른들의 기억은 나(와 동생들)의 기억이 되기도 했고, 그 기억으로 나(와 동생들)는 조금 과장된 자의식을 가지고 자랐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막내는 그것을 노골적인 한마디로 표현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부잣집 딸인 줄 알았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살면서 셋이 그렇게 완벽한 일치를 보인 건 아마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다. 그냥 깔깔거렸다. 그 말의 정확한 의미는 우리 셋 밖에 모른다. 그건 단순히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만 보면 우리의 유년은 그저 궁핍하지 않은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생각이 가능했던 건 우리가 가진 현실적 조건이나 환경, 그리고 보잘 것 없는 능력을 커버하고도 남는 지지를 어른들로 부터 끊임없이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물론 자부심이기도 했고, 부담이기도 했다. 그 결과 부잣집 딸이라는 과장된 자의식을 벗어내는데 우리는 각자 만만치 않은 기운을 써야 했다(쓰고 있다). 실제로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먼저 직감적으로 떠오른 말은, '이제 나의 유년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2.
막내의 또 다른 한 마디.
"우린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잘난척을 하고 산거야?"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안다. 약지도 못하고, 강하지도 못하고, 나이에 안맞게 쓸데없이 규범적이기만 해서 불편하기만 하고, 자존심은 있어서 막 살지도 못하고. 막내는 이 번에 내려와서는 아이를 강하게 막 키워야 한다는 말을 한 세 번은 하고 갔다. 남들에게 최선인 사안이 우리에겐 기본이라고 말하던 애다. 맞아, 맞아. 이 말을 하면서 우리 셋은 또 얼마나 기고만장했었던가. 이제 그 기본이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막내는 제가 가진 기본대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길러졌고, 그걸로 기죽지 않고 살아온 애다. 옛날에 그거 엄청 얄미웠는데, 지금은 많이 짠하다.  

3.
어김없이 옛날 얘기로 화기애애한 어른들. 낭만적인 세째 숙부님, 결정타를 날린다.
"형수님, 죽으면 어린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