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2nd story
between pages
diary
with others
film
my work
T.P
office
feminism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17. 6. 19. 17:41

오빠는 필요없다/ 전희경/ 이매진, 2008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논문을 이렇게 써야 했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인터뷰이들의 기록을 맥락에 따라 살피고 해석하며 마음을 담아 쓴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의 주제에 대한 애정(그 이상의 것)과 그 주제가 대변하는 사회적 흐름에 헌신한 경험은 그저 통과용 논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성찰적 기록이 된다. 읽을 사람도 별로 없을 나의 논문이 더 없이 창피스러웠다. 그저 피상적으로 겉도는 기록을 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회운동에 몸담은 여성들이 겪은 진보의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은 '오빠는 필요없다'는 제목으로 암축된다. 오빠들의 폭력은 대략 시기적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사회운동 초기, 오빠들이 지배하는 진보운동 속에서 겪은 좌절과 딜레마는 여성들 스스로 남성성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거나 역사적으로 축적해 온 여성성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 1990년대 정치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이때 정치적 약자들의 문제제기는 기존의 진보운동을 풍부히 하기 위해 동원되고 활용된다. 자신이 지식의 주체임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남성들 중 일부는 여성주의를 새롭게 유행하는 또하나의 '지식'으로 빠르게 습득해 나간다. 자신은 여러 영역을 총괄하고 '전체'를 인정해 주는 권위를 갖고 그 권위를 계속 유지하는 '지적 '오빠'가 되고자 한 것이다.

 

여성주의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시각에 동의가 되었다.

 

페미니스트가 되게 하는 경험은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위치지워진' 경험이다. 정치적 주체가 되는 과정은 각자가 놓인 조건과 살아 온 역사에 따라 다르고, 단 계속 변화한다. 즉 여성이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같아서'가 아니라 경험을 해석하는 정치적 지향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주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의하는 것이나 '진정한' 여성주의를 완성해 내는 것이라기 보다, 여성주의자들 사이의 차이의 배후에 어떤 권력의 맥락이 놓여있는지 이해함으로써 억압에 대한 해석과 저항의 전략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어떤 올바름이나 신념도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는 않는다. 그 올바름과 신념에 마음이 연결될 때,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걸게 될 때 비로소 뭔가가 시작된다" 에필로스에 쓴 저자의 글에서 이 글 전체를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