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몰랐다. 저자를 발굴(?)해 낼 수 있는 선구안이 있어야 하고, 변덕스러운 독자들의 독서 트랜드를 파악해야 하고, 거기에 경영과 마케팅 감각도 있어야 하는 직업. 첫 장을 읽을 때 까지만 해도 '내가 왜 진작 이 직업을 몰랐을까,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일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다가 끝까지 읽고 나서는 '아니다, 나는 못하겠구나' 싶었다. 단순히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책은 편집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다.
마음에 두고 있던 책은 아니었으나, 서점에서 첫 장을 훝어보다가 그냥 들고 나왔다. '저자 관찰기'라는 제목이 붙은 첫 장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저자들을 적고 있는데, 특히 간간히 등장하는 편집자와 저자와의 관계에 자주 마음이 머물렀다. 직업으로 만난 사람들이 특정분야에 대해 깊이있는 안목을 갖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고, 그런 만남을 계기로 나의 안목이 넓어진다는 것 또한 편집자가 가질 수 있는 큰 혜택이라 생각했다.
이 책에는 이은혜 편집자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팩트체커라 불리는 사람들, 그들의 꼼꼼함은 '대세에 지장없으면 그냥 통과'라는 태도를 갖고 있는 나에게 자극이 되었다. 늘 그렇다.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혹은 자세)에 관한 책에는 종종 끝까지 철투철미하게 디테일에 신경쓰며 일하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매우 능력있고 우수한 사람들이다. 이 책의 저자 이은혜 편집장도 그렇다.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내가 일하는 스타일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대개 일의 큰 방향을 잡고, 그 방향대로 일을 추진하도록 하며 그 과정에서 사소한 선택이나 디테일은 각자 담당자들이 알아서 하게 한다. 디테일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거나 '작은 일이 큰 일을 좌우한다'는 류의 말을 들으면, 위축이 된다. 이 책을 읽는 처음에 '와~' 했다가 '난, 아니군'하는 생각이 든 것도 일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 때문이다. 뭐든 끝장을 보자는 악착같은 성향도 부족하다.
어쩌다...
아무튼 편집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 쯤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자신의 일을 오래 잘 하고 싶은 사람이 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책.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생각한다. 내 직업에 대해 이런 책을 쓴다면 어떤 내용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다 그 모두에 실패하면 책의 세계로 빠져들곤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쓴다. 그처럼 사적인 독서는 의료 시스템, 종교권력, 장구한 역사를 지닌 가족이 껴안지 못한 자기 문제를 거울을 들여다보듯 꿰뜷어보게 해주기 때문이다.(66).
독자가 몰리에르를 읽고 정말로 재미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에게는 그 책을 덮을 권리가 있다. 몰리에르와 함께 있는 시간이 하품을 연발하게 만들면 그는 더 이상 내게 고귀하거나 흥미를 끌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독자는 때로 책을 책꽂이에 처박아둠으로써, 즉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지킨다. 나와 작가는 침묵함으로써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176).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가 캐낸 삶의 가치 일부를 자기 삶의 자원으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을 읽었다는 것을 때로 삶의 요소를 가져왔다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수 있다. 혹은 읽음으로써 삶의 결을 보는 시선을 조금 변경한다는 것과 동의어이거나.(182).

<읽는 직업>, 이은혜, 마음산책, 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