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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19:25
파리의 연인들. 가만 보면 나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이런 종류'란 큰 사건이 없는 그저그런 일상 속에서 이런저런 계기로 이렇게 저렇게 갈등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밝게 그린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대개 해피엔딩이지만 갈등구조를 부각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해피하게 끝나는 엔딩도 일상의 한 장면으로 느껴진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는 대개 일상적이지 않은 독특한 캐릭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이 예외적인 주인공이 갖고 있는 무제한적 긍정성은 주변의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감염시킨다. 그러나 주인공은 주인공답게 자신이 주변에 끼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못하고(혹은 무심하고) 주변사람들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요즘은 이런 관계가 눈에 들어오고 또 좋아 보인다. 좋은 영향을 주겠다, 받았다, 굳이 의도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조금씩 서로 기분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주는 그런 관계들. 그런 환경들. 그리고 사람들.





2009/06/18 23:50

씨티홀을 보다 보면 김선아와 차승원의 관계가 남자와 여자 뭐 이런 관계라기 보다는 멘토와 멘티의 관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랑은 거기에 양념처럼 살짝 끼워넣은 것 같고. 보면서 마구 부러워지는 것이다. 나도 저렇게 잘생기고, 멋진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그들 관계에서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알게 되었단 말이지.

차승원처럼 훌륭한 외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인생에 좋은 멘토 한 사람쯤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에서 얻는 것 말고, 멀리 있는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들 말고, 내 옆에서 숨쉬며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있는 목소리로 나를 깨우는...그런 사람말이다.



2009/05/04 19:37
인디언이 되었으면! 질주하는 말잔등에 잽싸게 올라타,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대지 위에서 거듭거듭 짧게 전율해 봤으면, 마침내는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실은 박차가 없었으니까, 마침내는 고삐를 집어던질 때까지, 실은 고삐가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풀이 깎인 광야뿐일 때까지, 이미 말모가지도 말대가리도 없이.

카프카



네 발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손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머리를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그럼 네 발은 꽃가루, 네 손은 꽃가루, 네 몸은 꽃가루.
네 마음은 꽃가루, 네 음성도 꽃가루.
길이 참 아름답기로 하고
잠잠하여라

적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인디언들이 부르는 노래

2009/05/01 20:35
 


'박쥐' 마지막 장면에서 연상되었던 그림이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송강호)과 태주(김옥빈)가 함께 태양빛에 타죽어 가고 태주가 신고 있던 상현의 구두가 다 타버린 태주의 발에서 떨어진다. 밤마다 맨발로 달리기를 하는 태주에게 상현이 벗어 주었던 구두이다. 마치 사랑의 정표라도 되는 양 태주는 상현의 구두를 보관해 두었다가 가방에 넣어 온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제 신발을 벗고 상현의 구두로 갈아신는다. 낡은 상현의 구두에서 느껴지는 것은 피로감...이었다.

영화는 그냥 그랬다. 박찬욱의 스타일이 금자씨에 이어 동일하게 되풀이 되는 느낌이었다. 지나치게 스타일리쉬한 박찬욱 작품의 지겨움이랄까. 중간중간 끼워넣은 유머도 예전의 작품들에서 본 듯한 느낌이었다. 강우(신하균)의 엄마 라여사 역으로 나오는 김해숙의 연기가 독특하게 좋았다.


2009/04/22 21:00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보면서 주목한 부분. 송신도 할머니를 지원하는 일본 시민단체 사람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규정하는 방식 혹은 의미를 두는 방식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송 할머니를 시혜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일의 정체성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누가 누구를 돕는다, 지원한다, 하는 식으로 타자를 향한 일방적 태도로 자신들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 그들은 송 할머니를 지원하는 일을 송 할머니의 일이 아닌 자신들의 일로 여긴다. 그래서 송 할머니와 그들은 서로 영향을 받으며 함께 성장한다.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거나 지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일을 추진하는 방식을 통해서 송 할머니와 그들은 함께 변화한다. "나는 끝까지 갈 수 있어. 그러나 니들도 결심을 해야 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송 할머니에게는 도움받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발견되는 비굴함이 없다. 지원모임에 10년 넘게 참여해온 양징자씨가 "재판지원운동을 한 10년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 또한 송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 동안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함께 성장하고 변하지 않는 관계는 그것이 설령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변하지 않은 쪽에게는 피로감, 불안, 부패 등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높다. 흠, 당연한 얘기를. 그러니까 몰적 정체성을 벗어 던지고자 하는 시도는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한 인간이 뿌리 깊은 불신과 고통을 딛고 어떻게 성장하느냐, 에 대한 훌륭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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