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진지하지만 경쾌하고, 심각하지만 무겁지 않고 가벼운' 삶의 태도를 꿈꾸어 왔다. 그러나 이 구호는 다분히 추상적이어서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로 나타나는지 잘 몰랐다.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모든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고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이 말은 정확한 포지션을 정하지 못한 내 삶의 태도들이 어정쩡하게 타협한 말 그대로 실체가 없는 구호일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오랫동안, 어쨌거나 '진지하지만 경쾌하고, 심각하지만 무겁지 않고 가벼운' 스타일을 장착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그 모호한 구호의 실체를 발견했다. 김영민의 글쓰기가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감상에 빠지는 일도 없고, 권위에 기대는 일도 없다(이미 하버드 박사와 서울대 교수라는 권위 위에 있지만). 그저 말을 하는데,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뼈 있는 말을 한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설득당한다. 기본적으로 유머러스한데 따뜻하기까지 하다. 2월의 졸업생에게 그는 이런 말을 전한다.
미래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중략)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좋은 이야기일까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은 너무도 큰 주제라서 오늘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좋은 등장인물이 필요하겠지요.....(중략) 좋은 이야기를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에 대한 망각도 필요합니다. 인생에서 일어난 일들을 요령 있게 망각하고 기억할 때 좋은 이야기가 남겠지요. 아무 일도 기억나지 않는 삶은 물론 지루한 이야기겠지요. 그래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115).
졸업생들에게 용기와 도전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조언과 충고이지만(그는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조언도 윗사람으로서의 권력을 향유하는 것이므로 그에 마땅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대화가 된다. 이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김영민의 스타일이 더 도드라진 책이다.
저자에 대한 정보없이 쭉~ 읽어가다가 영화평론이 등장하는 章에서는 깜짝 놀랐다. 뭐야, 영화평론이라니, 게다가 등단작가라니. 박식하고 해박하기가 이를 데 없군. 무시무시한 독서량을 엿볼 수 있는 글들. 확 느껴지는 거리감. 게다가 오늘날 에세이에 대한 진단까지.
하나는 교훈을 주기 위한 글쓰기, 재미없을 때가 많죠. 두 번째는 심란한 정서를 파고드는 글쓰기, 답답할 때가 있죠(312).
이 구절을 읽을 때는 괜히 찔렸다. 그리고 나의 빈한한 글쓰기를 생각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급 서평지에서 볼 수 있는 유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진지하지만 경쾌하고, 심각하지만 무겁지 않고 가벼운 글을 쓸 수 있을까. 김영민은 내가 부러워하는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다. 구호로만 여겼던 스타일을 맞닥뜨리니 이 스타일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겠다. 그저 나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들을 좋아한 것이다. 그런 생각은 했다. 지나치게 주관적인 글쓰기는 경계해야 한다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어크로스, 2019.2(10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