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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5. 15:00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도리스 레싱 책을 눈에 띄는 대로 샀지만, 아마도 이 작품이 주었던 것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없을 듯 하다. 나는 주인공 수전의 상태를 이해한다. 아무 일 없이 평범한 삶. 그 평범한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수전이 잊고 살았던 혹은 외면하고 살았던 것들을 자각한 순간 수전은 평범한 삶을 지속시킬 수 없었다. 그나마 '19호실'이 있었기에 수전은 아슬아슬하게 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19호실마저 안전하지 않게 되자 수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류의 영화나 소설은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이 강렬했던 것은 너무도 담담하게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표준'이라 할 만한 것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살짝 엇나가기 시작한 생활의 균열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수전을 몰아부치는 데 수전을 뺀 다른 등장 인물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동안 가정에서 수전이 해 온 일들은 누군가에 의해 안정적으로 변화없이 유지된다. 오직 수전만이 전과 다를 뿐이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상황. 아주 조금씩 조금씩 표나지 않게 삶은 수전을 궁지로 내몰았다. 수전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19호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다른 단편들이 다소 직접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 데 비해 이 작품은 그저 서늘하게 '있는 그대로'의 삶을 스케치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더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