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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9. 15:26

'어떻게 누구와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포스트 잇을 가장 많이 붙인 책이다. 일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 고민이 '일'이 놓여있는 환경/시장에 대한 분석과 함께 들어 있어 설득력을 준다. 무엇보다 현재의 내 고민과 맞닿아 있어 집중해서 읽었다. 후기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더 정확히는 책의 메시지를 잘 요약하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 이것은 곧 이 책에서 미래 나의 일에 대한 단서를 얻고 싶은 마음과 직결된다. 목차가 이끄는 순서대로 정리를 해 본다.

1. 표류하는 우리, 일의 배신

마음껏 사랑할 것, 그러나 객관성을 잃지 않을 것, 그 일이 아니더라도 어디서건 의미 있는 일을 또 찾을 수 있다고 믿을 것, 일의 성패가 당신의 가치를 말한다고 착각하지 않을 것.(32).

어떤 일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좋아함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일을 이루는 활동뿐만 아니라 일이 놓인 조건까지다. 조건과 상황이 어떻든 언제나 한결같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열정으로 시작했던 일이 일상이 되는 순간 삶의 무게를 열정만으로 가볍게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떻게 일을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것인가. 일을 손에서 놓기 전까지 놓을 수 없는 질문이다.(33).

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일을 이루는 활동, 일이 낳는 결과와 함께 일이 놓인 차원과 일을 통해 형성되는 국면을 이해하는 일이다...구체적으로 일을 고민할 때, 내 욕망들 사이의 우선순위 이해할 때, 그때만 우리는 일의 다른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다...그 해답은 우리의 일을 재구성하는 것이고, 일이 재구성되면 필연적으로 삶이, 삶이 놓인 관계망이 재편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일하기 싫다'고 말하지만 싫은 것은 대개 일 자체라기 보다 일이 놓인 조건이다.(48-49).

문제는 그 '좋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냐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대개 그놈의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52)...'그 좋아함이 성립되는 조건'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가 없다면 '좋아한다고 지금 생각하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 열정이나 꿈, '좋아하는 일' 같은 말이 절대적 목표인 양 추구되니, 일의 리얼리티 앞에서 모두가 속수무책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 일이 놓인 조건, 일이 포함하는 다양한 활동, 그 안에서 맺게 되는 관계를 아우르며 총체적으로 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이 놓인 조건에 만족하는 것과 일 자체에 만족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둘은 늘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언제나 조건과 상태를 전제한다.(65)'.


'좋아하는 일을 열정을 가지고 하라'는 류의 말이 폭력이라고 생각해 왔다. 얼핏 아름다워 보이는 말을 폭력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찾을 기회를 교육이 또는 사회가 제공하지 않은 채로 그 과제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보다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실행한 세대인 나로서는 이런 구호가 근사하고 매혹적이지만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느껴졌다. 저자는 '좋아하는 일'이 타인의 시선을 배제한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이 놓은 조건과 상황을 함께 좋아할 수 있는지 묻는다. 사회적 욕망이 투사된, 순순하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의문스러워지면서 동시에 사회적 책임이나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나기 시작하는 인생 후반기의 사람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일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보여주는 젊은 친구들의 사례를 봐도 그렇고. 

 

2. 지도를 다시 읽다, 일에서 원하는 것

욕구를 대체하려면 삶의 다른 배치 들어가야 한다. 저비용 구조로 자신의 욕구를 재편하고 싶다면 다른 장소와 다른 관계망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상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지, 어떤 사람과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우리 욕구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99)...자신의 일상을 돈벌이 경제 밖에서도 그럭저럭 꾸릴 수 있다고 믿을 때, 그것도 꽤 즐겁고 행복하게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생계에 대한 우리의 공포는 사라진다. 공포만 사라져도 일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어느 날 일자리를 갑자기 빼앗기고 돈벌이 경제 밖으로 밀려난다고 해도 삶 전체가 당장 나락으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오늘의 고된 일을 좀 더 견딜 만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의 다양한 결들이 좀 더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일이 지닌 돈벌이의 결조차 한층 부드러워질 것이다.(99)

일을 고용 중심으로 규정하는 산업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일의 규정을 고용시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활동까지 아우를 만큼 넓히지 않는다면 '고용 없는 성장'시대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하나의 일에는 무수한 결이 존재한다. 다른 결들이 모두 무시되고 돈벌이의 층위로만 일이 가늠될 때 일은 그 자체로서의 본질적 가치를 잃고 그저 수단으로만 전락하고 만다. 일의 영역에서조차 돈으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력은 이른바 '쓸고퀄'의 잉여다...이들에게 돈 안되는, 심지어 돈을 까먹는 일이 '일'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들 스스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엇이 자신의 일인지 아닌지 정할 권리를 세상에 넘겨주지 않았다..'일-들'(111-113).

'노력 금지'라는 게 열심히 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지 않은데 인위적으로 하려는 것들을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재미)는..나에게 의미있는 경험, 의미있는 활동을 말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는 밤을 새울 수 있잖아요. 다만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맥락을 알아야 해요. 거창하지 않아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맥락이 있고 목적이 있으면 작은 거라도 동기부여가 되고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138)

공정한 사회란 대체로 결과가 평등한 사회라기보다는 기회가 평등한 사회다...불평등이 능력주의의 결과일 수 있으므로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고 계층 이동성 저하와 심한 불평등이 함께 나타나면 문제가 된다고 이야기 한다....그러면서 저자(<국가의 숨겨진 부>의 저자, 데이비드 헬펀)는 지나가는 말로 능력주의가 구현되어 기회의 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사회의 불평등은 계급이 아니라 유전적 능력의 차이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되리라고 내다본다...결국 능력주의는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을 높이 산다기보다는 시장이 원하는 종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높이 사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주의가 정말 '공정한' 것일까.(143-144).


이 책에서 가장 혁명적인 챕터이다. 내 욕망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새로운 지도를 들고 길을 나서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일은 불안하고 때로 공포스럽다. 가장 큰 공포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생계에 대한 공포이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후자보다는 전자가 기존의 가치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망설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욕구의 재배치를 통해서 생계에 대한 공포를 벗어날 수 있지만, 사회에서 나만 뒤쳐진다는 느낌과 그로 인한 일상의 우울은 다시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 낸다. 퇴직 후의 삶을 예견하며 지금부터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면서 욕망의 재배치를 통해서 생계의 공포를 줄여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3. 시대의 사막을 건너는 법,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기

좋든 싫든, 명함은 당신의 현재를 말하고 이력서는 당신 삶의 역사를 말한다. 당신 삶의 스토리는 늘 이렇게 일과 함께 전개된다. 필연적으로.(151).

늘어난 잠재력과 자기 계발의 역량이 그저 '기존 구조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206)...자신이 하는 일이 내재적으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에는 관객이 필요하지 않다...주인공으로서의 '나'(대상화된 나)에 대한 탐닉에서 벗어나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자신이 믿는 가치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세상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것이 현실을 무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어쨌건 현실에서 먹고살아야 하며, 현실에 두 발을 붙이고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필요를 아는 것과 끊임 없이 세상의 시선으로 자신의 점수를 매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타인의 승인이 있기 전에 자신이 가장 먼저 역량의 확대를 확인한다. 그 순간 우리가 느끼는 감각이 바로 자유로움이다.(208-210).


내가 주인공이 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일종의 해방을 주었다. 어깨의 무게를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4. 함께 가닿을 정박지, 행복한 일을 위한 플렛폼

나 하나 때문에 일이 안 되는 상황을 허락해 주는 직장은 없다.(220).

그렇다면, 하나의 조직에서 사람을 대체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221)...등가교환이라는 가정에서 벗어나 있는 일터에서는 서로에 대한 의존이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상대가 해내는 몫이 없다면 일이 가능하지 않다. 일 자체가 '함께'를 전제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일의 규정자체가 '함께'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을 때 을이 채우는 10은 갑이 채우는 10으로 대체될 수 없다.(228-229).

어떤 사람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면 기업의 평가시스템으로 점수 매겨지는 '능력'때문일 수 없다. 대체불가능성은 능력이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질적 차이에서 나온다. 그런 대체 불가능성이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 차이를 발견해주는 조직이, 즉 사람'들'이 필요하다...능력을 갈고 닦는다고 해서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등가성을 따지지 않고 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해 주는 일터에서 일해야 한다.(230).

경제적 목적으로 수렴하지 않는 다양한 욕망을 담아내는 곳, 그게 직장이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244)...때로 어쩔 수 없어 하는 일조차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려 애쓴다. 그것이 자신의 일로, 자신의 삶으로 '이야기'를 직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245).

이 모든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 우리의 지친 일상을 끌고 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믿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밥벌이에서 돌봄받지 못한 꿈이나 열정을 그냥 쓰레기통에 처넣지 않을 수 있는 곳을 스스로 마련하려 애쓰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믿는다. 그런데 비축할 힘이 다른 어떤 가능성을 불러올지 상상하면 가슴이 뛰기도 한다.(253).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실제로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조직에서 중요한 인물로, 꼭 필요한 인재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은 그것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편집된 것이라 해도 조직차원에서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꼭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결론격인 마지막 장은 동의하는 바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요원하고 그래서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질적 차이'와 '경제적 목적으로 수렴하지 않는 다양한 욕망을 담아내는 곳'이 핵심적인 문장인데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저자가 책에서 계속 언급했던 '롤링다이스'의 실체를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지막 장은 내가 일을 구상하는데 좋은 방향이 되어줄 것이다. 내가 '일'을 만들때 나는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과는 절대로 일하지 않을 것이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일을 만들 것이므로.

출간된지 오래된 이 책이 그동안 왜 눈에 띄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 책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기존의 산업구조에서 이탈된 시각으로 일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제현주, 어크로스, 2014. 2015년 7월 초판 2쇄본으로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