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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22. 16:05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세 권 구입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청춘시절」, 「팔월의 일요일들」. 습관대로 라면 연보에 나와있는 출간일 순으로 읽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부터. 가장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고 이 책 때문에 모디아노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조금 망설이다가 「청춘시절」부터 읽었다. 습관을 저버리게 된 것은 결정적으로 '청춘시절'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책에 대한 기대라기 보다는, 그 시절 나의 어떤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일까.

그 무엇이, 훗날 그게 다름아닌 자신의 청춘 시절이 아닌가 자문하게 될 그 무엇이, 그때까지 그를 짖누르고 있던 그 무엇이, 마치 어떤 바윗덩어리 하나가 천천히 바다를 향해 굴러떨어지다가 마침내 한 다발의 물거품을 일으키며 사라지듯이, 그에게서 떨어져나가고 있었다.(244).

모디아노가 '그 무엇'이라고 지칭한 청춘시절. 정의내리기 애미한 '그 무엇'. 이 작품에 비춰보면 '그 무엇'은 밝고 싱싱하고 푸릇푸릇한 이미지를 가진 것이 아니다. 불안하고, 우울하며, 방향을 알 수 없어 부유하는 것에 가깝다. 작품 서두에 루이와 오딜의 현재의 삶(35세)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나른하게 그려진 것과 반대로 작품 전체를 차지하는 19세~20세의 루이와 오딜의 삶은 정처가 없다. 그 정처없음에 방향을 잡아주거나 길잡이가 되어줄 어른도 없다.

그들은 무엇엔가 좀 든든한 것에 매달리고 싶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은 시련의 한순간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물어볼 상대가 없었다.(155).

한 번도 누가 그들, 오딜과 루이에게 조언을 들려준 적이 없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늘 그들 자신들뿐이었다.(191).

어른이 부재한 청춘시절 만큼 불안한 것이 있을까. 그러나 삶이 불안하기로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청춘시절」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루이와 오딜만큼 불안하다. 꽤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브자르디가 그렇고 루이를 부자르디에게 소개시켜준 브로시에도 다르지 않다. 잠깐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인물들 - 벨륀, 비에티, 액스터 등 - 도 마찬가지다.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서 루이와 오딜의 선택은 한가지밖에 없다.

떠난다. 그렇고말고. 브자르디는 그를 잡아둘 권리가 전혀 없었다. 전혀. 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까닭도 없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를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 학교의 운동장도, 병영의 연병장도 이제 그에게는 어느 평범한 광장에 대한 추억처럼 비현실적이고 무해한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201).

떠나는 것. 루이와 오딜은 정확하지 않은 일로, 그들을 잡아두었던 사람들(어른) 곁을 떠난다. 그리고 청춘시절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시기를 접는다.

그러나 오늘로 그 음울하고 비 오는 세월은 그 끝에 닿았다. 이제부터 그 시절은 너무나도 아득한 옛날만 같아서 감미로운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그는 지폐 다발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제 마음의 결정은 내려졌다.(244).

다시 처음의 질문, 이 책을 먼저 읽기로 한 나의 기대는 무엇이었을까. 그보다 나는 그 시절을 루이와 오딜처럼 잘 떠나왔는가.

 

 

 

 

<청춘시절>, 파트릭 모디아노, 김화영, 문학동네, 20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