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방' 참석율이 저조하다. 슬슬 게으름을 떨만큼 역사가 오래 된거야, 그런거야? 꽃피고 새우는 계절탓이려니. 어둑한 공간에서 '작품'을 보며 머리를 쥐어 뜯기엔 짧은 봄 볕이 너무 아깝다. <5시부터 7까지의 클레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찬사를 받은 이 영화가 봄 볕을 뒤로하고 참석한 사람들의 인내심을 가늠하는 시험지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참석자 모두 영화가 끝나자 약속이나 한듯이 이구동성.
" 이 영화 누가 선택한거야?!" -- 이건 질문이 아니라 질책이다.
사실 이 영화, 그렇게 나쁘지 않다. 고전적인 아우라를 은근히 풍기는 클레오 역의 배우는 아름답다. 뺀돌뺀돌하게 예쁘기만한 요즘의 배우들 하고는 차원이 다른 품위가 있다. 이 아름다운 여자가 영화 내내 불안에 떤다. 죽을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 초조함을 관객에게 까지 전염시킨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는 5시 부터 7시까지 이 여자,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러다 전쟁터에서 생사를 경험한 군인을 만나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한다. 스토리 라인은 비교적 이렇게 단순하다. 그런데 이거 프랑스 영화다. 다 보고 나서도 '내가 본 것이 뭐지?' 이런 의문이 들게하는 영화라는 말이다. 사실 뭐, 의미같은 거 굳이 안 따지고 모호한 채로 내버려 둬도 된다. 프랑스 영화가 원래 의미는 몰라도 '봤다'는 거 하나로 잘난척 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으니까 -- 나 말이지, <5시부터 7시까지의 플레오> 봤어. 누벨바그의 대모인 '아네스 바르다' 감독 작품이야. <쉘부르의 우산>을 만든 '자크 드미'의 부인이라지 아마.
봄 바람난 언니들을 대신해 참석율을 높여주신 금선생님만 아니었다면 이쯤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가끔 일부러 모호한 프랑스 영화를 보는 지성을 갖췄다 뽑내며 자위하고 수다를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금선생님, 엄청 집요하시다. 모호함의 실체를 한 큐에 짚어주시는데 참으로 명쾌하다. 아! 이 영화가 이런 영화였구나.
"그 모호함의 실체가 뭐예요? 그걸 덮어두지 말고 정확하게 의식화시켜야 해요....여성주의 시각으로 읽자면, 이 영화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가슴, 의상, 불안심리를 떨치기 위한 쇼핑, 미신에 대한 집착, 동료들에 대한 예의없는 태도 등은 여성주의 시각에서 표현된 것이 아니예요. 죽음에 대한 메시지도 너무 표피적이고 직설적이고요. 영화 후반부에 느닷없이 군인을 등장시켜서 삶과 죽음을 계몽적으로 설명하잖아요. 은유적으로 은근하게 표현해야 했어요. 그러나 또한 이 영화는 진보적인 영화이기도 해요. 2차대전 시기에 남자들은 전쟁터로 동원되고, 여자들은 일터로 내몰리고, 가부장적 기본틀이 와해 되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런 시대에는 중산층의 윤리와 도덕이 강화될 수 밖에 없어요. 그 상황에서 주인공을 불륜으로 설정한 것은 매우 진보적이고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죠...이 영화 처럼 '죽음'을 주제로 한 일본 영화가 있어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生きる>라고 아주 진지하고 재밌게 죽음을 성찰한 영화예요. 꼭 봐요."
쌈빡하게 정리를 해 주시니, 오히려 할 말이 없다. '영화방'은 수다방인데, 너무 진지하게 공부를 하고 나니 수다가 값싸게 느껴지는 것이 '영화공부방'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싶은 유혹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러나!
"선생님, 저희는 영화를 분석하고 해석하기 보다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그래서 때로 영화가 뒷전일 때도 있어요. 영화는 그냥 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단 말이죠. 수다가 좀 어수선 하기도 하지만 제약이 없어서 오히려 편하기도 해요."
"그러면 말 그대로 아무 제약없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지."
"네, 그러려고 해요."
영화수다와 영화분석을 수준의 차이로 말하고 싶지 않다(누가 뭐래? 괜히...^^;). 우리의 수다는 아직 바닥 날려면 멀었다. 더 많이 지꺼려야 하고,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잘못 말하고, 또 누군가 잘못 듣기도 할 것이다. 오해도 쌓이고 싸우기도 하겠지. 그러면서, 그러다 보면, 그 지긋지긋하다는 情이 쌓여갈 것이고, 그 놈의 情 때문에 면전에서 쌍욕을 듣고도 끝내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니, 봄 바람 나서 뛰쳐나간 언니들, 바람 잠잠해졌거들랑 얼른 돌아와서 수다 떨어라. 상처난 부위에 바를 안티프라민도 준비해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