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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29. 14:14

자연스럽게 다시 읽게 되는 책이 있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며칠째 눈에 보이는 곳에 꺼내두고 있었다. 첫번째 읽고 쓴 글에는 ' 아, 참 사랑스럽다'라고 이 책을 읽은 감상을 적었다. 다시 읽은 느낌을 말하자면 '조용한, 겨울밤에 눈이 내리는 것 같은 글' 같다. 무슨 뜻인가. 그냥 분위기가 그렇다. 소라, 나나, 나기. 소란스럽지 않은 인물들이 소란스럽지 않게 자기 몫의 삶을 계속한다.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조용조용한 삶, 그러면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삶.

나는 왜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었을까. 잘 모르겠는데, 만두 빚는 장면을 다시 읽고 싶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에게 주어진 가장 세속적인 장면, 그래서 귀하고 행복하게 느꼈던 장면이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그 장면은 따뜻했다. 이 번에 읽을 때는 다음 문장에 눈에 들어왔다. 나나가 아마도 애자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태도일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사내 연애를 끝내고 하는 생각이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아기가 생기더라도 아기에게든 모세씨에게든 사랑의 정도는 그 정도,라고 결심해두었습니다.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 그것을 나나는 경계하고 있습니다. 104

 남편의 죽음으로 모든 에너지를 자발적으로 방전시킨 애자의 삶, 그래서 일생이 덧없고 하찮은 것이라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하는 애자의 삶과 애자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래도 계속살아보겠다고 하는 나나의 삶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나나는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아서, 그래서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227)고 생각한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무의미해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라고(227).

 '사는 낙'이 없는 생활에서 계속 살아보겠다고 하는 태도. 이것을 삶에 대한 깊은 연민이라고 해야하는지, 조용한 의지라고 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이 책에서 이런 태도를 다시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맥락은 다르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의 불행을 내가 삶을 지속하는 기준으로 삼지 말자는.

그리고 기억해두고 싶은 두 문장.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줘.(187)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13) 

「야만적인 앨리스씨」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