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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16. 19:04

한강의 책을 연달아 세 권 (힘들게)읽었다. <희랍어 시간>은 詩같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허공을 떠도는 모호한 말들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느릿느릿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말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나는 그저 글을 읽었고, 글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희랍어 시간>을 읽는 마음이 꼭 이 문장 같았다.

그때에는 그녀에게 말(言)이 있었으므로, 감정들은 더 분명하고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몸속에는 말이 없다. 단어와 문장 들은 마치 혼령처럼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보이고 들릴 만큼만 가깝게 따라다닌다. 그 거리 덕분에, 충분히 강하지 않은 감정들은 마치 접착력이 약한 테이프 조각들처럼 이내 떨어져 나간다.(희랍어 시간/67).

<희랍어 시간>을 느릿느릿 다시 읽을까 하다가 <소년이 온다>를 펼쳤다. 역시 느릿느릿 읽을 수 밖에 없었고, 중간중간 읽기를 멈추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한강은 이 글을 쓰고 나서 앓아 눕지 않았을까. 80년 광주를 내가 접한 그 어떤 기록물 보다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 일이 개인의 삶을,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동호, 정대와 정미, 진수, 은숙과 선주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흰>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우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표제를 통해서 한강이 소설을 통해 묻고자 한 질문을 추적하는데 <소년이 온다>에서 한강이 '내가 정말 인간을 믿는가, 이미 나는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제 와서 인간을 믿겠다고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제기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권희철은 (물론) 한강의 글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답을 내린다

그들의 싸움은 여지없이 패배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희생과 패배가 역사의 한 단면을 증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중략) 이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닌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떠맡고자 했다. 군인의 총에 맞은 사람들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듯 그 죽음에 온 힘으로 마음쓰면서, 어찌해볼 수 없는 일에 자신의 삶을 걸었거나 삶의 경로를 이탈시켰다. 그들이 한 일은 그들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움으로써 인간적인 어떤 것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움으로써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람들이다. 권력이 '인간이란 죄책감 없는 폭력 그 자체이거나 폭력 앞에 굴복하는 냄새나는 몸뚱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강요할 때, 그것이 인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 사람들이다. 인간이 그런 식으로 훼손될 수는 없다, 인간의 죽음이 그런 식으로 훼손될 수는 없다고 항의하고 있는 한에서, 동호가 자기 책임이 아닌 정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한에서, 은숙과 선주가 자기 책임이 아닌 동호 혹은 모든 사람들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한에서, 그들은 그들이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우면서 인간적인 무엇인가를 보존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희생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인간적 삶을 힘겹게 그러나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 것이다.(흰/161-163).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흰>을 김훈이 말한대로 어떤 불안정이라고 한다면(연필로 쓰기),  이 불안정한 '흰'의 공간에서 어떻게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우면서 인간적인 무엇인가를 지킬 수 있을까. 인간적인 무엇인가를 지키는 일이 한 개인인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의 생이 저토록 파괴되는 데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집단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해석만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자꾸 그런 의문이 든다. 그런데 이런 문장들이 또 나를 끌어당긴다. 이런 것, 이런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소년이 온다/116).

연행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 벗겨진 신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을 것이다. 열여섯살 난 그애는 무엇이 자신을 울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신들을 가슴에 안고 이층 노조 사무실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빈방으로 걸어올라갔을 것이다.(소년이 온다/164).

의지와 신념도 아닌, 철학과 이데올로기도 아닌. 한강은 이런 것을 인간적인 어떤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찌보면 사소한 마음의 움직임으로 지켜낼 수 있는 인간적인 어떤 것. 이런 마음을 반복되는 폭력 앞에서도 지켜낼 수 있을까. 특히, 사소하고 소리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폭력 앞에서 그런 마음이 사소하게 생겨날 수 있을까.

 

 

<희랍어 시간>, 한강, 문학동네, 2011.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2014. 

<흰>, 한강, 문학동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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