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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6. 19:12

읽고 싶은 책이었다. 90년생 여성 작가들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어딘'(김현아)이 궁금했다.  책에는 어딘글방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와 합평의 풍경, 어딘 글방이 키워낸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글이 실려있다.  

어디까지 쓸 것인가? 알고 보면 글쓰기는 용기와 관련된 행위다. 눈부신 한 편의 글 안에 전투의 상흔이 이곳저곳 깊에 배어 있는 까닭이다. 견고한 질서 완고한 관습 치밀한 통제를 부수고 깨뜨리고 균열을 내는 것, 글쓰기란 그런 것이므로 우리는 종종 뚝뚝 떨어지는 서로의 피를 지혈하고 깊게 배인 상처를 싸매주고 뜯겨나간 옷자락을 수선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종종 기억과 기록은 동일하지 않으며 문자 안에 다 담기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말로도 글로도 복구되어지지 않는 상처, 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게 되었다. 쓰는 일이란 그러므로 공적인 기억의 바깥을 떠도는 배제된 혹은 은폐된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일수도, 문자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무덤에서 부장품을 발굴하는 일일 수도, 표현되어지지 않는 것의 표정을 더듬는 일일 수도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게 되었다. 끝내 남는 것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 이라는 게 다만 놀라울 뿐./15

젊은 친구들과 글쓰기를 통해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부러웠다. 어딘이 유명한 작가들을 배출해서가 아니라 어딘글방에서 그가 해온 작업을 나도 하고 싶어서, 이쪽과 저쪽을 경계짓지 않고 사유하면서 글쓰기를 통해 오직 정직하게  나와 직면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그리고 이런 일을 누군가와 함게 하고 싶어서 부러웠다.

읽고 쓰는 용도로 공간을 만들고 부터는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늘 고민한다. 이 고민은 퇴직 후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되어서 마음이 조금해 질 때도 있다. 빨리 무엇이든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어딘글방 처럼 모집만 하면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다가 글쓰기를 꾸준히 해오지 못한 나를 돌아본다. 왜 글쓰기를 멈추었을까. 나 자신에게, 주위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으나 글쓰기의 성과는 느리게 나타나거나 너무 미미했다. 미미한 성과라도 지속적으로 강화를 받았다면, 계속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글쓰기는 뒤로 밀렸다. 궁핍한 생활은 아니었으나 소위 중산층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나는 즉각적인 수입이 발생되는 일을 찾아서 노동을 했다. 그리고 심신이 지쳐갈 때쯤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빠지지 않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 이 책이 각별하게 다가온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죽여버리고 싶어 아버지"라고 썼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놀란다. 그렇게 글을 쓴 이가 비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다만 말하지 않았을 뿐 깊고 깊은 심연에 가라앉혀놓은 이야기를 누군가가 글로 꺼낼 때 독자는 비로소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내가 패륜아나 별종이나 개망나니가 아니었구나, 하며 작가에게 동류의식을 느끼고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와 동시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집요한 탐구를 하게 된다./52

어딘글방 출신의 젊은 작가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활활발발함은 그들이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탐구를 거듭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을 이런 글쓰기로 안내하는 어딘의 공력이 대단하다. 그의 제자이자 동료들이 그에게 느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원천도 이 때문일 것이다. 품위를 잃지 않고 나이들면서, 어린 친구들과 소통하는 능력은 내가 닮고 싶은 것이기도 한다. 

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란 곧 삶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경험을 몸에서 떼어내 세상 속으로 보내고 그 풍경을 곰곰이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다. 애증과 수치와 모욕과 공포와 분노를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것 같은 것으로 다룰 줄 알게 되기까지는 스스로를 '견디는' 혹독한 시간과 스스로를 '넘어서는' 고단한 수련이 필요하다. 「어머니 전상서」는 글이 혹은 세상이 아름다우면서 아플 수 있고 아픈 것이 나쁜 것은 아니며, 우리가 서로에게 낙하하는 것은 부서지지 않기 위함임을 보여준다./140

제자들의 글 중 가장 인상 깊은 글이었다. 「어머니 전상서」. 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란 곧 삶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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