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2nd story
between pages
diary
with others
film
my work
T.P
office
feminism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22. 2. 3. 14:12

파커 J. 파머의 글이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과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인상깊게 읽었다. 조금 색다르게 전공 공부를 하고 싶었던 때에 교육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준 책들이라고 기억한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에서는 팔십에 이른 파머가 인생에서 얻게 된 성찰들을 이야기한다.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된다. 나이가 들면, 모두 이렇게 삶을 관조하게 되는구나, 이게 정답인가 보다, 하는 감정과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변명 어찌보면 안간힘 같은 느낌도 함께 든다. 그래서 나이듦을 전면에 내세우는 글 보다는 그냥, just 나이가 지긋한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글이 좋다. 이를테면 마종기의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같은 책(휙휙 읽히지 않아서 천천히 하루에 한두장씩 읽고 있다).

기대와는 달리 특별한 인상을 주진 않았다. 김훈이 추천사를 썼는데, 선물같았다. 핵심적인 내용은 오히려 추천의 글에 다 녹아 있다.

파커 J. 파머의 '가장자리'는 삶을 옥죄이는 헛것들의 무게가 빠져나가서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자유의 자리다. 헛것들은 무게가 많이 나가고, 그 무게로 사람들을 겁준다.(7)

젊었을 때는 나와 세상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있었다. 이 경계선은 내 자의식의 성벽이었고, 그 안쪽이 나의 자아였다. 나는 이 성벽 안쪽에 들어 앉아서, 이 세상을 타자화해가면서 잘난 척했다.(9)

젊었을 때의 이런 태도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온전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대체된다. 이 때 온전함이란 완벽함과는 다른것이다.

온전함이란 완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서짐을 삶의 총체적인 부분으로서 끌어안든다는 뜻이다.(31)

이 밖에 몇가지 의미있게 되새겨볼만한 구절을 기록해 둔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묻지 않는다. "무엇을 놓고 싶고, 무엇을 붙잡고 싶은가?" 대신에 이렇게 묻는다. "무엇을 놓고 싶고, 무엇에 나를 내어 주고 싶은가?" '붙잡고 싶은' 욕망은 결핍과 공포감에서 온다. '나를 내어주고 싶은' 욕망은 풍요로움과 너그러움에서 온다. 바로 그것을 향해 나는 시들어가고 싶다.(47)

질문을 바꾸는 연습이 필요하다.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을 내린다.

또 하나, 기억해 두고 싶은 것은 파머가 장자를 거론하면서 하는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강을 건너는데 자기 배에 빈 배가 와서 부딪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 그 빈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화를 낼 것이다. 장자는 말한다. "세상이라는 강을 건널 때는 배를 비우라"(112).

결국은 상황이 아니라,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그것도 특정한 누군가에게. 상황에 사람을 제하는 연습을 한 번 해볼까 한다.

또 하나, 글쓰기에 대한 정리를 한 부분,

글쓰기는 자신의 경험을 분류하고 선별하며 받아들이도록 돕는 회고적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는 또한 장래를 조망하는 행위입니다.(139).

글쓰기는 결국 삶을 편집하는 것이다. 이말은 곧 스스로 내 삶을 건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파머의 마지막 충고. 현재 자기 모습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법

첫째, 젊은 세대와 접촉하라 둘째,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회피하지 말고, 그것을 향해 움직여라 세째,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자연에서 보내라(239-240).

올해는 젊은 작가들의 글 보다는 나이 든 작가들의 글을 많이 접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파머가 그랬듯이 젊음의 화려함과 고통을 뒤로하고 파편처럼 이곳 저속에 부서져 있는 나를 온전하게 통합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테다. 한 번 해 보자.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