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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4. 16:40

아릿한 마음을 가지고 1부 '나의 집과 시간들'을 읽었다. 나에게 집의 의미가 각별한 시점이라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읽었는데, '공선옥'이라는 개인의 삶이 자꾸 겹쳐졌다. 얼마간은 연민과 측은함 같은 마음이 작용하였을 터인데, 오래 전 어떤 문학행사에서 본 그의 작은 몸집과 그 날의 분위기가 '공선옥'이라는 사람의 전체적인 인상을 고정시킨 탓이다. 오래전 짧은 한낮의 인상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한 사람의 독자적인 삶을 짧은 시간에 느꼈던 인상으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줍잖은 일인지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공선옥이 거쳐 온 여러 집(혹은 방)과 시간을 읽으면서 그녀가 나빠지지(이런 일차원적 표현이 솔직한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않은 비결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충분히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고, 충분히 나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또한 그녀가 지적했듯이 '가난=불행'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글쓰기인가. 글쓰기가 그녀를 지켜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끊임없이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시간을 되묻는 일을 통해서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 그렇다면 나도 나빠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바로 그 조건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아닐까. 살기 적합한 동남향이 아니라 서북 방향의 집처럼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내가 사는 한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러니, 세계지도 속에서, 혹은 세계사 속에서, 내가 이 작은 한반도에서, 전라도에서, 곡성에서, 그리고 우리 집에서 나고 자란 옹색과 빈곤과 하여간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모든 조건들은 글 쓰고 살아가는 내게 얼마나 풍요로운, 행복한 조건들이란 말인가. 그 춥고 더운 나의 옛 서향집 같기만 한 세상의 모든 조건들이(14).

....맥락없이 끼어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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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에 대한 감정을 글로써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 엄마에 대한 서북방향 집 같은 감정을 과연 글을 쓰기 위한 풍요로운, 행복한 조건들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문득, 맥락도 없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지난 밤 엄마에게 잔인할 정도로 심하게 몰아 부친 탓일 게다. 좀 전에 읽은 책(「당신의 어린시절이 울고 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친절하지 목했던 부모를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내가 유쾌하지 않으면 부모와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와 좋은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법칙에 구애받지 말하는 말이다)에서 부모와의 관계에 사회적 규범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한 구절에 잠시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 나는 잘 지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요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2부 '집을 찾아서'에서는 마음이 안정되었다.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이름하야 베이스 캠프를 차렸구나. 짐을 버리지 않고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지었구나. 부동산이 아닌 집을(79). 그래서 미니멀리즘은 공선옥에게 해당사항이 없다.

3부 '밥이나 집이나 한가지로'의 이야기는 입말이 살아있는 글이다. 에세이의 시대에 그야말로 신변잡기의 책이 늘어나는 시대에 '밥이나 집이나 한가지로'의 글들이 귀하게 느껴졌다. 실린 글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으로(헉, 이렇게 거창하게) 가치가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읽는 몇 안되는 책 중에서 가장 좋았다. SNS를 살펴보다 보니 「아침의 피아노」의 편집자가 편집한 책인데 이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고 있어서 또 한 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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