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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13. 11:39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 특히 에세이를 읽으면 저자에 대한 관심이 책의 내용을 앞지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좋아하는 작가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겠지만 천운영이 식당을 차렸다는 소식은 신선하고 쇼킹했다. 게다가 스페인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니. 돈키호테의 모험을 그대로 자신에게 구현한 선택. 타인의 이런 과감한 모험(이든지 선택이든지)을 보면, 불가피하게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도 어서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마음 탓에 저자의 무수한 이야기 가운데 나의 현재와 맞닿은 부분에 밑줄을 긋게 된다.

기회와 선택에 대해 생각한다. 기회와 선택은 대단한 성공이나 출세나 특별한 변화의 순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궁지에 몰렸을 때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와 선택. 그건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므로./64.

그녀가 식당을 차렸을 때의 마음보다는 접을 때 마음에 더 관심이 가고 마음이 갔다.

실은 끝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세세히 하지 않았다. 시작보다 어려운 것이 끝을 맺는 일인지라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하면 다른 시작도 불가능한지라. 시작만큼 공들어 끝을 맺을 궁리를 하는 중이라고./168.

그래서,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박수 칠 때 떠날 시점은 지나버렸고, 박수를 받으며 떠나려고 한다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는가. 이또한 욕심은 아닐지, 가끔 생각한다. 돌아가야 할 영역이 천운영 처럼 분명하게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나는 또 다른 영역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그림이든 글이든 사랑이든 운동이든 여행이든, 시작하지 않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 시작을 하는 순간 실체가 생기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는 법. 그러니 시작을 했다는 것은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 그 반의 동력이 대단하다는 것. 그 힘으로 수레의 바퀴는 어쨌거나 굴러가게 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 어떻게든 시작을 하고 볼일./169.

이 문장이 묘하게 용기를 주었다. 아마 저자도 다짐처럼 쓰지 않았을까.
뒷 부분에 몇몇 사람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김훈의 인터뷰가 좋았다. 김훈의 말을 모두 기록해 놓고 싶을 정도로.

도를 아는 사람은 사물에다 무리한 힘을 가하지 않지. 음식도 그렇게 해야지./291.

젊음에 대한 부러움은 없어. 늙으니까 편해. 늙은이에겐 늙은이의 자리가 필요하지. 자기만의 자리. 저기 구석진 곳에 편안한 자리. 제대 말년이 다가온 것 같아. 끝나는 거지./296.

실패하면 안 돼. 돌파해야지. 산전수전 다 겪어야지. 더 겪어야 해.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알아야지. 그래야 노인이 되지. 다만 너무 오래 하지는 마. 글을 초초하게 쓰려고도 하지 말고,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지칠 때까지만 버텨./298

김훈의 말은 쓸쓸한데 아름답다. 이런 어른이 곁에 있다는 것이 부럽다. 잘 읽었으나, 천운영도 에세이를 쓰는 구나, 싶은 생각도 함께 들었다. 같이 구매한 <돈키호테의 식당>은 손이 가지 않는다. 읽을 마음이 나면 읽겠지. 그녀가 식당을 글로 마무리 했듯이 나도 나의 일을 글로 마무리할 준비를 시작해야 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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