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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6. 23:30

<아무튼, 술>, <아무튼, 요가>에 이어 아무튼 시리즈 세번째 책이다. <아무튼, 술>이 좋았고(어쩜 이렇게 호쾌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무튼, 요가>는 그냥 그랬고, <아무튼, 외국어>는 좋았다. 한 나절만에 다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는 책과 책 사이에 잠깐 휴식처럼 잡게 되는 책이다.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진지하고, 경박스럽지 않을 만큼 유머러스하다. 무엇보다 글쓴이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서 타인의 인생을 살짝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다.

휴식처럼 읽는 책들은 기록을 하지 않지만 <아무튼, 외국어>의 몇 구절을 적어 놓고 싶었다. 가령 이런 구절.

우리에게 없는 말들은 곧 우리에게 없는 개념이다.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했고, 후일 러시아어 통역을 오래 했던 일본의 에세이스트 요네하라 마리는, 열네 살에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열등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생전에 술회했다. 심지어 체코에서는 '어깨 결림'이라는 말도 들은 적이 없으니, 말이 없으면 신체 감각도 없게 마련이라고 했다(15).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읽은 직후라서 언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중국어 학습의 경험을 차례차례 들려주는데 저자는 외국어를 단지 기능적인 도구로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단한 대가가 되는 일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일, 열심히 해도 잘하기 쉽지 않은 일, 무엇보다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매달리고 싶어지는 그런 때가 있다.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쓸데 없는 일'의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72).

이 문장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 부분을 읽는데 눈이 확 뜨였다. 잊고 있던 소중한 것을 기억해 낸 느낌이랄까. 그에 의하면 실질적인 효용이 없는 쓸데 없는 일이 오히려 삶을 버티게 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뜬금없는 질척거림, 모르는 말에 대한 쓸데없는 동경이 때때로 한국어로 가득 찬 지루한 일상의 마라톤을 버티게 해주기도 한다.(73)

그 밖에....영어에 대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동병상련? 뭐, 그런 구절을 읽을 땐 엄청 낄낄거렸다.

우리는 서로, 그야말로 이웃 나라이니 어쩔 수 없이 쌍방이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구사하는 영어 수준도 비슷하여 영어 문법은 꽤 하는데 회화가 안 되는 통한마저 공유하고 있으니....(107)

 

<아무튼, 외국어>, 조지영, 위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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