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2nd story
between pages
diary
with others
film
my work
T.P
office
feminism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08. 9. 14. 01:08
어려서 부터 명절이 싫었다. 천성이 게을러 일하는 것도 싫었고, 사춘기가 되면서 부터는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빼앗긴 다는 것도 싫었다. 어른들의 말잔치도 성가셨다. 유난스럽게 차례와 제사를 챙기는 할머니와 엄마 덕에 명절이 다가오면 훨씬 전 부터 숨이 찼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하는 언니도 시집을 가자 명절 일은 고스란히 우리 손에 떨어졌다. 그 많은 전을 어떻게 다 부치냐. 너 일하는 걸 보니 명절은 명절이다. 집은 사람들로 붐볐고, 왁자했고, 시끌벅적했고,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 막내 삼촌은 제사 때 마다 눈치 빠르게 조카들을 칭찬했다. 우리 조카들 같은 애들이 없어. 우리가 모두 결혼을 하자 숙모들은, 이제 제사 준비는 누가 다 하냐며, 농담삼아 말했다.

시댁에서는 모든 제사를 미사로 대신했다. 시댁에 가기전에 명절 준비하는 엄마를 간간히 돕긴 했다. 명절연휴 때 마다 공항이 붐빈다는 뉴스를 보며 명절연휴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한심하다 생각하면서도 한편 부러워 했다. 우리는 언제 저래보냐.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수년 전 막내 삼촌은 그 뉴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 뒤로 삼촌은 한동안 우리한테 신뢰를 잃었었다(어린 것들이 뭐한다고ㅡ..ㅡ).  

아빠가 돌아가시고 어찌어찌하여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를 사촌 동생이 모셔가자, 엄마는 아빠 제사를 미사로 대신할거라고 했다. 우리에게까지 제사에 대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사는 미사대로 드리고 제사는 제사대로 드렸다. 다른 건 몰라도 제사 하나는 끝내주게 챙긴 아빠에 대한 엄마 나름의 위로 같은 거 였을 것이다.

올 추석...어렸을 때 부터 바라고 바라던 조용한 분위기다. 제사 안 지낸다. 엄마는 와중에도 제사 지낼 생각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엄마랑 나랑 둘이 상 차리고 절하는 그림은...아니었다. 나야 그렇다치고 동생들까지 명절 때 마다 집으로 불러 올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제사는 접고 미사하고 연도 바치자는 말에 엄마는 의외로 쉽게 동의했다. 내일..오늘이구나. 휘청거리는 엄마랑 같이 성당간다. 저녁 때는 애들이 와서 북적거리겠지만 어쨌든 쓸쓸한 명절이다. 내가 고대했던.



prev"" #1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