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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8. 10:55

제목이 위안을 주는 책이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읽었는데, 이 문장을 잊고 있었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책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면 저자의 삶의 태도가 어떤지, 어떤 사람인지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4부로 나눠진 글을 읽으면 '정은령'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좋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는 저자와 출판사의 지명도에 비해 아쉬운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꼭지들은 단행본으로 묶을 필요가 있을지 의심스러운 글로 채워져 있었다. 1부와 2부의 이야기가 그랬다. 나의 이야기를 독립출판으로 제작해 보고 나서 느낀 점은, 굳이 책으로 엮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삶의 장면 장면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나에게 의미있다. 그런 글쓰기 방식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가치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개인적인 글쓰기가 반드시 나를 고양된 삶으로 이끌지 않아도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지난 삶을 가다듬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영역이다. 출판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공적인 영역을 획득한다는 것이고, 그 안에서 나의 이야기가 공명을 얻으려면 개인적 차원을 한 단계 더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제목이 주는 울림과 저자의 선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도 몇몇 기록하고 싶은 문장들이 있다.

세상의 갖은 이론 다 때려치우고, 그저 한 여자라도 도와라./41

자식에 대한 사랑이, 받는 자식에게도 꼭 사랑으로 체감되지는 않는다는 걸, 아니 사랑이 아니고 저항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각인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93

부모된 자의 비애이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나와 모친의 관계를 봐도 그렇고.

부모란 아이와 함께 있으면 애가 뭘 잘 못하는지만 눈에 보이고, 혼자 있으면 내가 뭐가 부족한 사람인지만 떠오르는 자리인 것 같다./106

바로 그 순간, 엄마가 된 후 처음으로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느꼈던 것 같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제가 필요할 때면 앉아서 쉬다가 가는 어디 한구석에 늘 있는 낡은 의자 같은 것. 그 정도의 몫을 넘어서 제 자식이라고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되고, 내 자식이니 내가 안다고 억지를 부리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116

이 문장에 담긴 생각은 나의 생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읽으면서 그렇지, 맞아 하며 반가웠다. 

'우리는 다소의 변명과 희망적인 미화 없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라는 케네스 클라크의 문장/145* [서경식의 <내 서재 속의 고전>]

사람은 오직 자신이 마음을 다해 해본 일을 통해서만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까./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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