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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8. 19:48

전성태의 책을 검색하다가 발견했다. 이런 책도 썼구나 했는데, '문장배달' 하는 '문학집배원' 노릇을 했던 결과물을 엮은 책이다. 당연히 배달된 문장보다는 그 문장들에 대한 전성태의 단상이 마음에 더 닿았다. 가령, 부희령의 「꽃」을 소개하며, "어떤 소설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쓰이기도 하는데, 그 일이 철저할수록 공감을 얻고 소설은 보편의 세계로 나아갑니다"(55) 라든가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의 문장을 배달하며, "이십대, 삽십대를 돌이겨보면 사회가 조장하는 스케줄에 내 인생을 꿰맞추려 했던 게 가장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61) 같은 단상은 전성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선한 사람의 글은 선한 느낌을 주는데 전성태의 글이 그렇다. 사람도 글도 똑같다.

음악이든 책이든 자기의 느낌대로 듣고, 읽으면 된다지만 음악을 듣는 것에도 책을 읽는 일에도 전문적인 식견이란 것이 있다. 그 세계에 입문해서 헌신한 사람들만이 파악할 수 있는 디테일과 혜안. 이 책 <기타 등등의 문학>에는 문학에 헌신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혜안들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전성태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결코 인생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 문학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래서 인생에 단 한편은 없다는 것. 어쩌면 겸손한 실패로 점철되는 게 문학인생이 아닐까 생각하니 모처럼 봄날이 훤해집니다."(259)

이 문장에 왜 울컥하는 것일까. 평생을 헌신한 대상과 함께 나이들고 늙어간다는 것. 거창한 욕망이 없이, 무엇이 되겠노라는 위대한 목표없이 그저 내가 선택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이렇게 말할 수 있기 까지의 시간이 존경스럽다. 내가 아는 한 전성태는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포착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 말맛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170). 이런 작가가 트랜디한 출판문화의 분위기 속에서 독자들에게 선뜻 선택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 조금 유감스럽다(이런 분위기에서 나도 예외는 아지만). 그래도 오늘 부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전성태를 꼽겠다. 잠시 잊고 있던 그를 만난 기쁨이 크다.  

 

<기타 등등의 문학>, 전성태, 책읽는 수요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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