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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30. 17:07

임경선 작가가 하루키 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런 책까지 쓴 줄은 몰랐다. 인스타 피드에서 얼핏 보고 서점에 갔는데 눈에 띄어서 구입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 중 누군가를 좋아하고 모델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축복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그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으로 번진다는 건 참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생각했다.

하루키 자체가 매력적인 인물인데, 거기에 임경선의 시선으로 보니 뭐랄까, 보다 생생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하루키 책을 마구 읽어 싶어졌다. <아무튼, 하루키>를 읽고 초기 작품 몇 권을 구입해 두었는데 다른 책을 제껴두고 읽을 핑계가 생겼다. 나는 누군가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끝까지 좋아할 수 있을까. 좋아할만한 대상을 못 만난 것일까, 아니면 내 성정이 문제일까. 하루키도 부럽고 임경선도 부러웠다.

술술 잘 읽혀서 밑줄을 그은 부분은 없었는데, 마지막 글 '소년다움'에 있는 글은 기록해 두고 싶다.

상처를 받을 때는 제대로 상처 받는 쪽이 낫다는 것이다. 자제하지 않는 편이 좋다.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자제하면 자제한 만큼 더 깊이 상처를 받고야 마는 것이다. 내가 그녀를 사랑했고 지금 내가 얼마나 무너져 내렸는지를 표현하고,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였는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중략)...혼자 조용히 품어내는 힘이 없으면 '마음의 연륜' 같은 것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다....스스로에게 '힘내라'보다 '일단 살아내자/견뎌내자'고 말한다. 그런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나다운 방법으로 애쓰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어떤 역경이 와서 '나의 규칙'은 관철시킨다. 즉 사소한 것들을 흩뜨리지 않음으로써 더 큰일을 해나갈 수 있다.(239-240)

무라카미 하루키는 비관적 현실주의자다. 그에게 인생은 '어차피 지는 게임'이다. (242)

현실주의자다운 충고이다. 그런데 '어차피 지는 게임'이란 것은 뭔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인생을 어차피 지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사는 게 좀 겸손해지려나. 아둥바둥하지 않고 여유있어지려나. 한번도 생을 이기고 지는 것으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으나 자꾸 생각나는 말이 될 것 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임경선, 마음산책,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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