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고, 따뜻하고, 조용하고, 가만가만하게 등을 살살 쓸어주는 것 같은 작품이다. 그렇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 하고 안심하게 하는 책.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현재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 '세컨드 윈드'가 불어온다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직접적이지만 아주 큰 위로를 준다. 쉽게 읽히면서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는 측면에서 이 소설집이 삶을 지속하게 하는 일종의 지침이나 매뉴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뉴얼은 필요할 때 마다 가까운 데 두고 읽으면서 참고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책도 그런 용도로 사용될 것이다. 손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이 책을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어릴 때 내가 상상한 미래는 지구 멸망이나 대지진,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이나 제3차세계대전 같은 끔찍한 것 아니면 우주여행과 자기부상열차, 인공지능 등의 낙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이토록 평범한 미래>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 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더니 '세컨드 윈드'라고 하더라구요. <난주의 바다 앞에서>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이질적인 다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거지. 그에 바로 사랑의 정의야.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미래는 가장 보통의 얼굴로 이미 현존하고 있다.<해설, 바람이 불어온다는 말>
(세컨드 윈드에 대해 언급하며) 삶에 완전히 패배했다는 것은 더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는 뜻이다.<해설, 바람이 불어온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