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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3. 11:12

소설 속의 소설인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가 이 작품을 더 잘 설명해 주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동안, 작가는 왜 이 소설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은희경의 소설을 거의 다 읽은 것 같은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산만하고 뭔가 좀 어지러웠다. 등장인물들이 많아서 그런가 싶기도 했는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 메세지(?라는 게 있다면)가 직접적이고 비의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스트레이트.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작품 자체보다 작가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은희경이 이 작품을 꼭 쓰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전환이 가장 가시적이고, 폭력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에 혼란스러웠던 나를 어떻게든 정리를 하고 싶어했을 것 같다. 은희경 답지 않게 상식적으로 마무리 된 결혼식 장면은 그래서 그 상투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고 싶다. 때묻은 행주를 깨끗하게 빨아서 쨍한 햇빛에 자연소독 시키는 것 같은 기분?-물론 이건 내 기분.

등장인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역시, 은희경 답게 가차없다. 인물과 그 인물이 대면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 은희경은 언제나 얄짤없다. 환상이 손톱만큼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현실적일 수 있을까.

은희경의 소설에는 늘 세상을 관망하는 듯한 화자의 시각이 있다. 독자들은 그 부분을 기가 막히게 발견하고 줄을 친다. 현재의 심리적 상태와 맞물려 내가 주목한 문장은 이것이다.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문제를 낸 사람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기준, 즉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려는 것은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는 권력에 따르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그저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범생의 착각이다. 그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완강한 틀에 맟춰가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진짜 모범생은 아니었다.

진짜 모범생이 아닌 줄 알았는데, 나는 진짜 모범생이었던 것이다. 모범생이 아니었다는 착각을 벗어나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잘 할 수 있겠지. 김희진과 김유경이 내 속에 혼재해 있었고, 두 인물이 그래서 남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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