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2nd story
between pages
diary
with others
film
my work
T.P
office
feminism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22. 12. 23. 12:31

이 책은 에세이가 아니라 사회과학서로 분류되어야 한다. 한국여성노동사. 언니들의 삶은 'insight'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조망되고 해석된다. 우리사회가 아주 오래동안 언니들의 삶과 노동을 얼마나 나몰라라했는지 언니들의 육성과 'insight'의 객관적 자료들이 낱낱이 보여준다. 그래서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는 정애씨의 말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맨 몸으로 사회적 부조리에 맞짱떴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누구의 삶도 파란만장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책은 그저 팔자라고 치부되었던 언니들의 파란만장을 조심스레 살피고, 그 삶에 이름을 붙여준다. 춘자씨가 "내가 직업이 세 개인 큰 월급쟁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야제. 어른(남편)한테 그래야제. 나 월급쟁이여!"(217)라고 말할 때는 마음이 찡했다. 

퇴직을 앞두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생각을 정리하는데 언니들의 삶이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 같다.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와 각종 제도적인 개선에도, 여성만이 일과 가정의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상황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어머니 세대가 일 대신 가정을 선택했다면, 딸 세대는 가정보다는 일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을 뿐이다. 딸들 간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임금 수준이 낮고 직업적 전망이 밝지 않을수록 결혼·임신·출산을 기점으로 일터를 떠나는 선택을 하기 쉽다. 이는 다시 일터로 돌아온 여성들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차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146)

도미씨는 "'엄마, 할머니'등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 노동을 숭고한 것으로 타자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건 숭고한 희망 같은 게 아니라 현실에 있는 일이자 나의 일로 인식해야 해요." (154)

울 시간이 있어야 울지.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있어야 울지. 너무 힘들어서 '나는 못 살겠다'하고 큰애를 업고 주문진 바닷가까지 나왔어요. 무작정 집을 나왔는데 이게 무슨 돈이 있어야지. 돈이 있어야 버스를 탈 거 아니래요. 하루 종일 바닷가에 앉아 있다가 할 수 없이 도로 걸어서 들어갔어요. 용감하지 않으면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어요.(165)....정성숙 작가는 "욕구를 실현할 조건이 안되니 그냥 포기해버린 것이다. 가부장 공동체에서 자기 의지나 욕구가 있는 여성은 살아남기 힘들다"라고 말하기도 했다.(214)

내가 지금 태어났으면 좀 재미나게 살 것 같아요. 큰 트럭있지. 운동화 끈 딱 졸라매고 그거 운전하면서 전국을 누비고 싶어요. 한 그러면 기관차 운전? 운전하면 쏴악 달리고 얼마나 좋아요. 모든 걸 훌훌 벗어버리고 속 시원하게 크게 크게 휘젓고 다니고 싶어 아주.(202)

이 책, 기획이 참 좋다. 퇴직하고 구술사 연구를 할까...생각했었는데 아이디어 뺐겼다.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