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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23. 10:55

궁금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한 사람의 마음과 그 결정을 수용한 사람의 마음까지. 지난한 갈등과 번민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실제로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단 몇 줄만 쓰여져 있을 뿐이었다.

브라이언이 알츠하이머병에 동반되는 '긴 작별'을 원치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고, 내가 구글에서 여러 차례 검색을 하다 그 경로의 끝에서 디그니타스를 찾는 데에도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15-16. 

아직 나 자신으로 남아있을 때 이 삶을 끝내고 싶을 뿐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점점 더 잃어가기 전에.42

저자는 남편 브라이언의 결정을 존중하고 '동행자살'(accompanied suicide)-생명 중단 선택에서 동반과 지지를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조력자살'(assisted suicide)대신 동생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에 함께 하면서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한다. 어떤 강요나 우울감 없이 동행자살을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게 가장 큰 과제로 보였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불안한 마음의 상태가 담담한 글 사이사이에서 삐죽삐죽 드러났다.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면서 읽느라 정작 책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다. 내가 브라이언이었다면 일주일만에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에이미라면 그의 선택을 지지하고 도울 수 있을까. 속이 울렁거리고 메슥거리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도중 <스틸 앨리스>를 다시 봤다. 저자가 남편 몰래 두어 본 영화이다. 아직은 앨리스인 채로 살아있는 과거의 앨리스가 현재인 앨리스에게 미리 녹화해둔 영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안내하는 장면을 보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책의 저자와 똑같이 어서 빨리 약을 먹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내가 정작 알츠하이머에 걸린다면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지금 생각은 OK.  그러나 막연하고 추상적인 생각은 현실적 결단과 선택을 동반하지 않아서 믿을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안다. 나는 정말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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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언니 앨런은 최선을 다해주었다. 어떤 제안을 하지도, '만약에'로 시작되는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지도, 브라이언의 병증이 어쩌면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수도 혹은 아주 천천히 진행될 수도 있다고 말하지도, 내가 울지 않을 때 본인이 울지도,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죽음과 사이좋은 우리 사인방의 끝에 대한 본인의 슬픔을 쏟아내지 않는 것으로. 16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백이나 언명, 심오한 감정의 표현 같은 건 없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고통 속에서 기진맥진한 채, 혹은 약에 취해 마지막을 맞는다. 71

나는 일단 미국의 의료 체계를 성토하는 것으로 시작해. 이 나라가 존엄하고 편안하게 죽을 권리의 보장을 어떻게 거부하고 있는지, 고통을 착취해 벌어들이는 돈이 얼만지, 의사들이 대체 왜 한계를 인정하고 환자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는지 불만을 토로한다. 203

나는 말한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지상에서의 유일한 시간이라는 이유로, 혹은 신이 인간에게 할당해준 거라면 뭐든 감사히 받아들여야 해서, 혹은 사는 동안('사는 동안'이 충분히 길기만 하다면) 우릴 괴롭히는 질병의 치료법이나 치료약이 개발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당신이 장수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면, 당신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만약 당신이 죽음은 적이고 삶의 지속 그 자체가 승리라고 여긴다면, 그 삶이 정말 외롭고 괴롭고 제약이 많더라도 그렇게 믿는다면, 삶의 질이라는 것을 거대한 숲속의 가느다란 한 그루 나무로, 거대한 싸움에서 논쟁할 만한 덕목 하나쯤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나와도, 브라이언과도 생각이 다르다고. 228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이후에는 나와 함께 있을 때 이본은 자신의 슬픔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가 먼저 혹은 제일 크게 울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신의 상실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실로 그녀는, 브라이언의 말대로, 일류임이 틀림없다.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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