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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7. 17:10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책이다. 공교롭게도 정초에 읽은 책이 코로나-19에 관한 책이고, 정초에 본 영화가 '돈룩업'이다. 둘 다 우울함을 너머 공포스러운 이야기이다.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는 중국의 페미니스트 궈징이 코로나-19 발생 직후 우한에 내려진 봉쇄령 상황에서 기록한 일기이다. 보호와 통제의 어디쯤에서 궈징은 아주 구체적인 일상을 기록한다. 사이버상에서 밤마다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하고, 매일 먹은 것을 기록하고, 이웃의 풍경과 하루치의 산책을 매일매일 기록한다. 이런 사적인 기록이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희진은 이 책의 해제에서 '구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추상적인 논의로는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없'다고 썼는데 정부의 정책(혹은 조치)는 본질적으로 그것의 영향을 받는 시민 개개인의 삶을 모두 반영하거나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는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나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개인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유럽의 국가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는 방역에 대한 정부의 소신과 방향이 명확할 때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면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방역조치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백신 3차 접종을 예약해 두긴 했지만, 3차 접종의 효과를 믿어서가 아니라 나랏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입장에서 '하라니까 한다'는 마음이 크다.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도 언급되듯이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우리의 삶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새로운 삶의 양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의외로, 놀랍게도, 과거의 소통방식을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내 주변에). '사람들 끼리 얼굴 맞대고 만나는 방식'에 대한 소박한 그리움은 있으나,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라기 보다 만남을 조심스러워하는 상황인 만큼 문제가 되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이다. 그런 면에서 궈징의 일기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전염병을 대할 때, 정부는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느낄 공포도 고려해서 정책을 펴야 한다(186)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 하지도 않으며, 불안과 공포에 잠식당하지도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중요하다(견디는 것이 아니고!). 책의 제목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밤마다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는 그래서 소중하다. 소통방식의 한계...라고 쓰다보니, 습관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면이 아니라고 이를 '한계'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한계라고 말하기엔 이런 사이버 상의 소통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밤마다 수다를 떨고, 매일 매일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것,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일을 찾는 것(이 책에서 궈징은 환경미화원을 인터뷰 한다)이 현재 우리의 '할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이다.


무력감을 없애는 게 정말 힘들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력감을 없애는 게 아니라 무력감과 공종하는 방법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매일 끊임없이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를 보고 있자면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미약한 존재인지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니 난 밖에 나가야만 한다.(83)


희망이 고통을 끝내 준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희망은 지금 이 순간과 과거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앞으로 나가는 거라 했다고. 전염병이 확산되는 지금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 지나간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쉽게 지나가지 않을 테니까.(121)


많은 사람이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끝까지 책임을 묻는 사람, 안 되는 일이라는 걸 훤히 알면서도 행동하는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회는 이렇게 함께 앞으로 밀고 나가는 많은 사람들 덕에 결국 바뀌는 거라고 생각한다.(150)


희망이 있어서 행동하는 게 아니다. 행동하니까 희망이 생기는 거다.(234).


'오늘은 무슨 요일'이라는 개념이 없는 상황, 오직 '오늘'과 '내일'(215)만이 있는 나날 속에서 쓴 궈징의 일기에는 위와 같은 말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적인 혹은 공적인 기록에서 얻을 수 있는 메세지는 이것이 아닐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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