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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3. 17:42

아, 뭐라고 써야할까. 생각나는 나는 것은 '씨발됨'. 엘리시어의 모친이 자신의 아들을 구타할 때, 사람이 아니라 짐승으로 변하는 시점을 엘리시어는 '씨발됨'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그럴 때가 있고 그럴 땐 멈추지 않는다. 그럴 때 그녀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가 된다. 달군 강철처럼 뜨겁고 강해져 주변의 온도마저 바꾼다. 씨발됨이다.(40). ....참지 못한다기보다는 참기가 단지 싫은 것이다. 때려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내면에 쌓는 일이 귀찮고 구차해 이것도 저것도 마다하고 때리는 데 몰두하는 것이다.(41).

누구든 마음에 '씨발됨'의 씨앗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 이야기는 씨발됨을 발생시키는 씨발된 상황과 씨발된 상황에서 차츰 씨발년/놈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는 엘리시어의 모친이 아들을 구타하는 상황보다는 가정폭력을 신고하러 구청에 찾아간 엘리시어와 고미를 상대하는 구청직원이나 상담자의 말이 더 씨발된 상황으로 느껴졌다. 일을 떠맡기 싫어하는 그들의 태도가 너무 이해되었다. 이런 상황들이 모이고 모여서 씨발됨을 만드는 것일테다.

계층이 낮을 수록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행동 양식을 보일 수록 씨발됨을 맞딱뜨릴 수 있는 가능성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씨발된 상황에서 씨발이 되느냐, 않느냐는 누구의 몫일까. 나, 개인의 몫일까. 저자는 마지막에 이 글을 '엘리시어의 실패와 패배의 기록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다.

그대는 어디에 있나. 이제 그대의 차례가 되었다. 이것을 기록할 단 한 사람인 그대.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이것을 어디까지 들었나. 이것을 기록했나, 마침내 여기까지, 기록했나. 엘리시어가 그대를 기다린다.

그대가 옳다.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다시 한번 그대가 옳다. 그대와 나의 이야기는 언제고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천천히 올 것이고, 그대와 나는 고통스러울 것이다.(161-162).   

피해갈 수 없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2013.10,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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