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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21. 15:31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성장이 어느 한 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어서, 성장 이야기는 모든 세대의 삶에 녹아있다. 표면적인 주제로 성장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산문집(특히, 최근의 산문집에는 더욱)에는 성장 코드가 한두군데쯤 들어가 있다. 청소년이나 젊은 친구들의 성장이야기에는 왠지 모를 흐믓함과 눈부심 같은 것이 있고(좌절과 실패에도 눈부심이 느껴진다), 어른들의 성장이야기에는 고요함과 담담함이 있다. <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는 한 사람의 성장에 대한 훌륭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망 탓인지 올해 들어 '공간'에 대한 책들을 줄줄이 읽었다. 주로 공간에 대한 기능적인 안내를 해 주는 책들을 선택하다가 장바구니에 오래 담아 두었던 이 책을 '그냥 한 번 읽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을 했다. 좋았다. 작은 집을 구입해서 수리를 하고(거의 다시 짓고), 그것을 다시 나에게 맞게 고쳐가는 과정에서 조용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진단하고 스스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날을 요란하게 포장하지 않고, 미래를 낙관하지도 않으면서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아주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 한다. 최근 보기 드물게 진실하고 솔직한(진솔한 이라고 표현하지 않으려고 풀어서) 이야기다.
특히, 과거의 자신을 떠나보내는 이야기로 구성된 '집을 통해 나를 알아갑니다'의 글이 좋았다. 도저히 버릴 수 없을 것 같았던 것들(지난 날의 글과 사진)과 이별하며 저자는 이렇게 마음을 정리한다.
스물의, 혹은 서른의 나에게 소중했고 어울리고 쓸모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녀가 찾아와 목소리를 되돌려준다 해도 이제는 쓸모가 없었다. 내가 부를 노래는, 내가 앞으로 불러야 할 노래는, 그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지금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79)
그렇게 지난 날과 이별하면서 저자는 '어떤 상황에 상관없이 나만의 일상을 누리는 경지에 이를 나를 기대'(145)하며 '봄이 그저 겨울만을 이겨낸 계절이 아니라 지난해를 온전히 지나서야 다시 만나게 되는 삶'(192)과 같다고 자각을 한다. 그리하여 에필로그의 제목 처럼 '버거워 하지 않고 평온한 삶'에 이른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집에 살고부터, 정말 나는 조금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오롯이 끌어안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느긋함 같은 것이 생긴 듯 하다. 어느새 삶은 단단해졌고, 포기는 쉬워졌으며, 수긍은 빨라졌다. 내 노력 밖의 일에 너무 애쓰지 않고, 웬만해선 나를 잃지 않으며, 그렇다고 내 안으로만 파고드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쓸 줄도 알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고, 수많은 오늘에서 하나씩 깨달으며 내 자신을,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초에 읽어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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