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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9. 16:37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이런 종류의 책이란, <선량한 차별주의자나>나  <이상한 정상가족>처럼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공부한 결과로 얻게된 지적인 성과를(사회적 가치를 지닌) 설득력 있게 풀어낸 글을 말한다. 내가 이런 글을 쓴다면 어떤 주제가 될까, 생각해 보았는데 교육-입시-진로 뭐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긴 한다. 지금은 딱히 그런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언젠가 쓰게 된다면 그 언저리 쯤의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단호하고도 따뜻한 시선.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쓴 김지혜의 글에서 느껴진 정조이다. 저자는 일상 속에서 무심히 던지는 말과 행동 속에 담겨있는 차별적 태도와 그러한 태도를 가능하게 하는 그릇된 신념을 하나씩 하나씩 알기 쉽게 드러낸다. 그리고 때로는 품위있게 위장되기도 하는 분리와 배제, 그로 인한 차별 속에 담긴 우리의 이기심을 가차없이 드러낸다.

특권을 알아차리는 확실한 계기는 그 특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때이다. 더이상 주류가 아닌 상황이 될 때, 그래서 전과 달리 불편해질 때, 지금까지 누린 특권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32)

"모두가 똑같이 힘들다"는 말도 맞지 않다. 그 보다는 서로 다르게 힘들다고 봐야 한다.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기회와 권리가 다르게 분배되고, 그래서 다르게 힘들다. 여기서 초점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삶을 만드는 이 구조적 불평등이다. 그렇기에 불평등에 관한 대화가 "나는 힘들고 너는 편하다"는 싸움이 되어서는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 "너와 나를 다르게 힘들게 만드는 이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공통의 주제로 이어져야 한다(34)

이런 통찰이 좋다. 나의 사고는 딱 네가 힘드니, 내가 힘드니, 하는 시비에 멈춰서 있었다. 그리고 저 문장 다음에 이어지는 말들, 우리는 편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의 삶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것이라는 말은 감동스럽기 까지 하다.

충분히 지력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지력을 뽑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지력과 경험으로 쌓아올린 소신을 낮고 단호하게 말하는 글은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수없이 붙혀놓은 포스트 잇은 허를 찌르는 문장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정관념은 자신의 가치체계를 드러내는 일종의 자기고백인 셈이다(47)

인생에서 중요한 일일수록 그 선택은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최대한 안전한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75)

뒤로 갈수록 저자의 주장은 점점 구체성을 가지며, 목소리는 더 단호하고 단단해 진다. 교통을 방해하면서 시위를 하는 장애인 연대에 대해 마치 (나를 포함한)독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저자는 말한다.

"꼭 그런 방식으로 시위를 해야 하나?"는 질문은 이런 민주적 절차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나온다. 그런데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법도 때로는 부당하다. 부당한 법은 비민주적인 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선거와 입법 등의 절차는 대개 다수결 원칙을 택하는데, 이 의결 방식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려지는 결정이 소수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소수자가 정치사회적으로 배제되고 고립되어 있다면 그럴 위험이 크다(164-165). 

저자는 고정불편한 이 사회의 정의, 평등 이런 것이 과연 있는 것인가를 문제제기 하며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206)라고 책을 마무리 한다. 강연장이었다면 일어나서 박수라도 쳤을 것이다.

배운 바가 커서 참, 반가운 책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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