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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8. 15:47

제목보다 부제...라고 해야 하나, '목숨 걸지도 때려치우지도 않고,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기'라는 문장이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이 나이에도 일과 나 사이의 자리-정확하게는 '일'이라기 보다 '일'로 얽혀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의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힌트가 될 만한 꼭지가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갖고 책을 펼쳤다.

팟케스트를 통해 느꼈던 대로 황선우는 자신의 조건에 맞게 '일과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고 있었으며, 여러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를 차곡차곡 들려주었다. 공감하고 끄덕거리며 읽으면서 딸에게 권해야지, 하고 읽던 중에 문장 하나가 마음에 와서 콕 박혔다.

나이는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는 절대적 조건이 아니며, 던져버리고 극복해야만 하는 악조건도 아니다. 나이를 먹으며 보편적으로 따라가는 몸과 마음의 변화만큼이나,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좋은 것들도 내게는 많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다가올 50대가 더 기대된다. 그런데 50대 여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는 이야기는 왜 접하기가 어려운 걸까? 선배들이 꺼내주지 않는다면 몇 년 뒤에는 내가 먼저 시작해볼지도 모르겠다./165-166

50대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은 바로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로 치환되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하고 싶은 것을 더이상 미루지 않는다, 는 것이다. 50대, 더 정확하게는 60이 내일모레인 50대 후반의 여성들은 '하고 싶은 것' 보다 '해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고 앞세우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서 교육받았다. 그래서 때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이 폭력처럼 느껴질 때 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데, 하고 싶은 걸 하라니, 도대체 뭘. 나와 내 친구들은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구현할 독자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보다, 기존의 시스템에 편입해서 그 기준에 맞춰 살았고, 이제는 하나둘 명퇴를 하고 있다. 명퇴를 하고 그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뒤늦게 '내 맘대로' 살아보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하고, 자건거를 탄다. 제각각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것을 하면서 사는 친구들의 공통점은 더 이상 천년만년 살 것 처럼 살지않는다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욕망을 감추거나, 만족을 지연시키며 살지 않는다. 퇴직을 앞둔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좀 괴상한 생각이지만, 죽을 병에 걸렸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내 그 질문 끝에 꼭, 왜 죽을 병에 걸려야만 하는가? 지금은 왜? 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그 후로 나는 가능한한 하고 싶은 것을 즉각 하려고 애쓴다. 죽을 병에 걸리면 제일 먼저 회사를 때려치우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경제적인 조건을 끊어버리기엔 아직 돈들어갈 일이 많다. 그 밖에는 현재의 조건에 맞게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집 말고 별도의 공간을 구했고, 비싼 안마의자를 들였고, 쉬고 싶을 때는 휴가를 낸다. 보편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50대의 여성들은 이렇게, '지금을' 살고 있다. 

50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왜 접하기 어려운 것일까? 글쎄. 사회가 50대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거나 허용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50대들은 여기저기 모여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그런다. 그들을 보는 사회적 렌즈가 부족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50대가 궁금하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시대에 아직 남아있는 날들을 무엇을 하며 재미있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한 바 앞서 같은 고민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또 한편 그런 생각도 든다. 어린이날인 오늘 고등학교 2학년 조카에게 한 말이다. 민주야, 이모는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배워. 어른들에게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것 같아. 어쩌면 나의, 50대 후반의 이런 태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한 50대들은 들려 줄 이야기보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어린 작가들의 에세이를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 자꾸 손을 뻗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의 마지막 말을 기록해 두고 싶다.

불행은 밖으로부터, 부가항력적인 힘으로 닥쳐온다.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의 변화, 예측할 수 없는 사고와 준비되지 않은 이별, 혹은 자연스럽지만 낯선 노화나 질병의 영역에 속한 것들 말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이 되어도 아마 나쁜 일이 다양한 형태로 닥쳐오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행복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작고 소중한 반짝임들을 떠올려보면 다른 사람이 호의로 나에게 건네주거나 내가 다른이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애써 피워낸 빛들이었다.....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되어주자고.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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