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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5. 14:25

후루룩, 후루룩 읽었지만 군데 군데 공감하는 구절이 있었고, 특히 '에필로그'의 모든 말들은 현재 나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작가가 퇴사 전후로 겪었던 마음의 상태를 (물론 어느정도 정제를 한 상태였겠지만) 에둘러 적지 않고 거친 상태 그대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훨씬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이부분,
특별히 직장 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새로 만든 사내 동호회에서 회장을 맡기도 했고, 지긋지긋한 야근을 끝내고 아직도 회사에 남아 있는 후배들을 모아 밤새 술을 마시기도 했고, 친한 선배들의 생일도 꼬박꼬박 챙겼다. 그러나 나는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에 늘 혼자였다. 그때마다 그들은 처음 만나는 사이처럼 낯설었고 서늘한 거리감마저 느껴졌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었고, 내가 믿었던 그 사람은 나를 믿지 않는 듯 했다. 나는 참으로 외로웠고, 그런 그들을 마음 속으로 원망했다. ...그때의 내 고독은 어디에도 속마음을 속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차가운 감옥 속의 처절한 외로움이었다/141.
책에서 공감하는 구절은 항상 현재의 반영이듯이 이 구절 또한 현재의 마음 상태를 반영하는 것일테다. 에필로그를 천천히 옮겨적는 것으로 현재의 마음을 다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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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오고 가고 또 온다."

카프카는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썼다. 회사를 떠났다고 올 일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오지 않을 일이 오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 관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내가 회사를 떠나기로 한 것은 세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세상 속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되찾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길에 다가오는 많은 것들이, 나의 속도로 잘 지나가도록 충분히 숨을 고르고 싶었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마냥 뒷짐을 지자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내게 진짜 기회를 주고 싶었다. 앞으로는 누구의 몫이 더 큰지, 누구의 짐이 더 큰지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았다. 내게 집중하는 지루하고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또 보내면서,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믿었고, 내가 이룬 것들을 꺼내 보이며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스스로의 납득이 필요했다.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덤덤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기꺼이 참아내야 했으니 말이다.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일이 전부였던 인생을 더 이상 살지 않고, 일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뜻이다. 일에만 의존하며 보내던 하루가 너무 익숙해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지경이 된 스스로에게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묻기 보다 따뜻하고 상냥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응원해주며 살겠다는 이야기이다.

일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화양연화가 있다. 거창하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을 뿐이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이 없고,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가 너무 기특해서 퇴근길에 절로 웃음이 나왔던 순간들. 그런 순간을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일에서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당신은 최고의 시절을 담담하게 지나갔거나 지나가는 중이니까. 그렇기에 어떤 이유로 일을 떠나게 되었다고 해서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제는 선택이다. 더 나아갈 것인가, 다른 길을 둘러볼 것인가. 결정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반복되는 루틴은 안정감을 주지만 우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한다. 그러니까 자구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모호한 불안감은 '설마'로 떨쳐내면 그만이다. 당신이 걱정하는 일의 90퍼센터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이상 밤에 자책하지 않으며, 평범하게 잘해온 그저 그런 하루를 반복해도 괜찮다고, 너의 불안은 당연하며 누구나 그렇다고 스스로 거리낌 없이 말해줘야 한다.

더 이상 확신에 찬 삶을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뒤돌아보면 나의 확신은 오만에 가까웠고, 자만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나약한 마음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저 나를 이해하면 된다. 나를 이해하면 세상에 이해하지 못 할 일이 없다. 그 숙간, 세상은 내 편이 되고 나는 세상의 편이 된다. 남은 생은 이렇게 살아도 근사하지 않을까?/263-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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