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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23. 16:01

김금희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산문 <세상 밖의 모든 말들>, 짧은 소설(掌篇)모음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長篇 <복자에게>, 그리고 단편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각 장르를 골고루 읽었다. 독자층이 두꺼운 작가인데,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문체가 옛날 작가들(이라고 하니까 좀 쓸쓸한 기분이 드는데 김인숙, 신경숙 등의 시대의 작가들을 생각하고 썼다)의 스타일과 요즘 작가들의 스타일이 섞여있는 느낌이 들었다. 잘 읽히다가도 뭔가 서걱거리는 느낌. 당연한 말이지만 시대에 따라 문제의식도, 문체도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사실이 내가 오래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복자에게>를 잘 읽었다.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꼈지만(그래서 역시 조금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스타에 짧게 메모했듯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성장'코드를 찾아내고 소설에서 '관계'코드를 찾아내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자, 장기이다.

緣이 끊어진 관계를 굳이 다시 이어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인간관계의 生老病死를 믿는 편이라 끊어진 인연은 생명이 다했다고 믿는다. 돌아보면 실제로 그렇게 생명이 다한 관계들이 있고, 그 관계의 멀어짐에 대해 연연하지 않았다(그런가?). 사람들 사이에는 끝내 풀 수 없는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서운함이 있을 수 있으며, 서로 분명히 알고 느끼지만 결코 표현하지 못할 마음들이 있다. 작가의 표현대로 '특정할 수 없는' 여러 마음들이 사람들 사이에 놓여있다. 그 특정할 수 없는 마음에 이름을 붙여 감정을 입히면 관계의 생로병사가 이루어진다. 生老病死. 死로 끝인가. 再生은 없는 것인가.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 수록된 <레이디>는 <복자에게>와 비슷한 정조를 풍긴다. '나'는 단짝 친구인 유나네 바캉스에 함께한다. '나'에 대한 어른들의 심상한 말과 그에 대한 유나의 반응으로 '나'는 서로 가까워지고자 최선을 다한 유나의 마음을 차단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옆집에 사는 데도 불구하고 유나와 우연히도 마주치지 않았다. 훗날 '나'는 생각한다.

갑자기 그런 것이 어떻게 생겨나 이토록 난폭하게 마음을 뒤흔드는지, 나는 더 나이가 든 뒤에야 그런 마음이 두려움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유나와 내 관계에서 상대를 믿지 못한 건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126.

비슷한 문장이 <복자에게>에도 나온다.

나는 그때 복자가 나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더 아팠다. 상처가 깊은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믿을 힘이 없다는 것, 눈으로 보이지 않는 편까지 헤아려 누군가의 선의를 알아주기 힘들다는 것까지는 나 역시 헤아리지 못했다. 사실 내게는 있었을까, 그런 믿음이./217.

관계의 生老病死가 마무리 된 후 관계가 다시 再生으로 이어질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再生의 계기는 우연일 수도 있고, 의도적 노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을 나누었던 어느 순간의 단절은 어떤 형태로든 상흔을 남긴다. 그리고 상흔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 그것이 훗날 제대로 이해될 때 까지. 김금희의 명언이 오래 남는다.

모든 이해는 나중의 일이다./126.

관계의 새로운 시작은 그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우연이든, 노력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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