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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15. 21:02

<토니오 크뢰거>를 언급한 책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책에선가 언급된 이름(?)이기는한 데 제목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원래는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읽기 위해서 구입한 책인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토니오 크뢰거'의 이름 때문에 <토니오 크뢰거>를 먼저 읽었다. 첫 부분을 읽을 때는 <데미안>인가 하는 느낌이 있었으나 곧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로서 토니오 크뢰거가 가진 정신의 양면성을 그린 이야기. 이 주제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도 조금 더 고양된 형태로 변주된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김진영이 토마스 만 작품 중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한 작품인데 작가 아센바흐가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가진 타치오를 향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타치오를 향한 아센바흐의 감정을 매우 천천히 집요하리만큼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김진영에 의하면 타치오에 대한 사랑은 영원한 아름다움에 합일되고자 하는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스스로 소멸되는 예술가적 삶을 동성애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눈에 띈 문장을 적는 것으로 다음을 기약하고자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적일 것라는 얘기였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자 안에는 신이 있지만 사랑받는 자 안에는 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머리에 떠올렸던 생각들 중에 아마도 가장 섬세하고도 가장 조롱기가 많은 생각일 것이다. 동경이 지니는 온갖 교활함과 지극히 은밀한 쾌락이 바로 이 생각에서 유래하고 있다.(482)

 

이 두 작품보다는 사실 <행복에의 의지>가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깊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한 다음 날, 행복에의 의지가 사라지자 죽고만다. 행복에의 의지가 실현되면, 죽을 수 있는 것인가...라고 쓰고 다시 마지막 장면을 읽어보니 이렇게 쓰여있다.

그가 그토록 죽음을 눌어놓을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의지, 행복에의 의지, 오로지 그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행복에의 의지가 충족되었을 때 그는 투쟁도 저항도 할 수 없이 죽어야만 했다. 그는 더 이상 살아야 할 구실이 없던 것이다. 나는 그가 잘못 행동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자기가 결혼한 그녀에게 의식적으로 나쁘게 행동한 것인지를 물어 보았다. 그러나 나는 장례식에서 그녀가 관의 머리맡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도 역시 그에게서 발견했던 바로 그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엄숙하면서도 강력한 진지함, 승리에 찬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259)

독일 문학을 읽은 것은 처음인가? 그런것 같다. 책 선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좀 더 집중해서 읽자.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단편선/ 안삼환 외 옮김, 민음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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