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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18. 21:28

김연수의 책을 읽었다. <시절일기>와 <일곱해의 마지막>. 특별한 정보도, 이상한 선입견이나 편견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선택이 잘 안되는 작가였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잠깐 스치듯 봤는데, 문학에 대해 매우 예민한 태도를 가지고 있구나, 정도의 이미지는 있었다.  <시절일기>와 <일곱해의 마지막>도 결국은 문학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시절일기>에서 김연수는 자주 이 시대에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거의 10년간 써온 글을 묶은 책에서 이 질문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그리고 이런 답을 내놓는다.

(일본 시인 고바야시 잇사를 말하며)...."세상은 지옥", 그리고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그게 바로 "이지만"과 "그렇지만"의 힘, 세상의 불행에 역접으로 접속하는 힘, 평생 잇사가 손에서 놓지 않는 문학의 힘일 것이다(25).

(노무현의 죽음과 용산참사를 말하며)....어떤 슬픔으로도 그 타자를 애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이렇게 견디기 위해서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고 감독들은 영화를 만들고 시인들은 시를 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디기 위해서 사람들은 소설과 시를 읽고 영화를 본다. 애도를 완결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날마다 읽고 써야만 한다(44).

소설은 꿈과 같은 것이라, 글로 쓰여지기 이전의 실제 이야기가 없다. 대신 꿈이 해석되어야만 하듯 소설은 문장을 모두 해독한 독자에 의해 한 번 더 해석되어야만 한다. 작가는 독자의 이 능력을 믿기 때문에 터너와 마찬가지로 해석될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233).

자신이 가진 무기/도구/재능으로 (비참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김연수에게 문학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문학적 행위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모호하게 떠도는 실체들, 소설이든 시든 문학으로 표현되지 않고는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것을 드러내서 독자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 글쓰는 일이 개인적 차원에 국한될 수 없는 이유이다.

<일곱해의 마지막>에서도 문학에 대한 물음은 계속된다. 기행의 삶을 빌어서 김연수는 쓰고 싶으나, 쓰는 일이 자유롭지 못한(불가능한) 자의 비애를 말한다. 작가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 일컬어지는 백석은 미화되지 않는다. 두려워하는 인간, 이쪽 저쪽 편을 갈라 위치를 정하는 것에 소질이 없는 인간, 그러나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인간, 그리고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인간, 그리고 시인. 이 책을 읽는 중에 기행이 자비를 들여 만들었다는 시집 <사슴>을 구했다. 김연수와 백석에게 동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시절일기> 서두에 백석의 시가 소개되는데, 시를 적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출근해서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으로 시 한 편씩을 필사한다. 백석과 김연수 덕이다. 

역사적 실존과 상관없이 나에게 이순신의 이미지는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다. 이제 백석의 이미지는 <일곱해의 마지막>의 기행이 되었다.

 

<시절일기>, 레체, 2019.

<일곱해의 마지막>,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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