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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3. 22:59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을 80년대 작가들이 썼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80년 광주의 일과 광주가 파생시킨 그 언저리의 사건들은 단지 소설의 소재로 머물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집단적 분노와 우울, 마음의 빚 같은 것들이 뒤엉켜 80년대의 모든 사건은 (우리의) 삶을 아주 무겁고 심각한 것으로 만들었다.

사전 정보 없이 이 작품을 접하고, 서두에서 이 작가가 과연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을 어떻게 다룰까, 매우 궁금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 작가는 그 사건을 아무렇게도 다루지 않고, 그저 그대로 놓아 두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을 하나의 공간에 비유한다면 어느 한 때에 그 공간에 있었거나 그 공간을 스쳐지나갔거나,  그 공간을 멀리서 보았거나 혹은 그 공간이 어디인지 단지 알고 있거나 그 공간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급하지 않게 조금은 나른하게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하고 있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라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짝 겹치기도 하고 상관없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이야기가) 좋은 느낌을 주었다. 그 무거운 80년대의 사건을 좋은 느낌으로 접한다? 살짝 죄책감 비슷한 것이 느껴지는데 또 한편으로는 살짝 해방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결국 작가는 (나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공간화 하면서 그 공간을 다녀간 사람과 그 공간에 다가가는 사람들을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연결하고 있다. 만나서 얼싸 안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으면서 조금 머뭇거리고 주저하면서. 그 공간을 다녀간 사람에게 그 공간에 다가가는 사람은 '미래'이고, 공간에 다가가는 사람에게 다녀간 사람은 '연습'이 아닐까 하는...굳이 제목을 끼워맞춰보고 싶다. 그렇다면 '산책'은? 우리 삶을 짖눌렀던 역사의 무거움을 조금 덜어냈을 때 조금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역사'라는 공간을 거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할 수 있는 작가들이 부럽다.

*이 책의 제목을 <미래 산책 연습>으로 읽었는데 <미래, 산책, 연습>으로 읽어도 되겠구나 싶다. 

최명환이 자주 이야기하는 주제 중 하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며 최명환의 집 소파에 앉아 있는 오후의 시간에는 어쩐지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나는 내가 당장 처리하고 신경써야 할 생활의 여러 문제들은 떠오르지 않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 혹은 인류의 일원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럴 때면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지금 어떤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며 인식하게 되는 드문 상태 속에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상태는 차를 한 잔 마시는 정도의 시간 동안에만 가능한 것이었다/15.   

나는 몇 개의 집을 갖고 싶었고 몇 개의 나도 갖고 싶었다. 방금 불이 켜진 아이보리색 단층 건물에 꼭대기 층에서 살고 싶었고 내가 사는 곳에서도 살고 싶었다. 여객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향하고 싶었고 방금 전 오사카로 향하는 배를 타서 침대칸에서 짐을 정리하고 싶었다. 내 뒤에서 지루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리고 싶었고 보이지 않는 타워 내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219

첫 발췌문은 실제로 그런 때가 있어서, 뭔가 기시감이 느껴져서, 두번째 발췌문은 실제로 가능했으면 싶지만 불가능하기도 한 일들을 동시에 욕구하기도 해서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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