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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8. 10:55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 무루(박서영) 작가는 그림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삶의 지향과 태도를 작은 목소리로 전달한다. 그것이 개인적 취향과 한계에 머물지 않고 읽는 이의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는, ‘실은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뒤로 하고 세상 속에서 ‘타인의 마음에 닿는 일’을 찾아 ‘먼 곳 까지 가보는 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삶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은 관성 밖에 존재했다’ 추상적인 말이 일상적 작은 실천과 결합되어 구체적으로 세상을 확장시키는 의미로 전달된다.

작가는 산책을 하고, 식물을 돌보고, 드로잉을 배우고, 고양이와 생활하며, 채식을 지향한다. 이러한 생활의 기저에는 좋은 습관을 지니고자 하는 노력이 놓여 있다. 이 책에서 습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매우 의미 있게 읽었다. ‘한 사람의 습관이 그 사람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문장은 올해의 베스트 문장에 해당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어떤 것을 반복해 나가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람으로 살겠다는 마음 때문이라는 말도 큰 울림을 주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진 정체성(고유성)을 갖는다. 희망적이면서 잔혹하다.

아이가 아닌 다 자란 어른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선택할 수 있을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미 굳어진 습관들 사이에서 어떤 좋은 습관을 더 가질 수 있을까? 이 비관적인 질문의 답이 이 책의 제목이 될 수 있겠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면 된다. 이상한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관습적인 삶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경험’을 사소한 것이라도 자주 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 토대 위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습관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노동과 생산에 관여되어 있어야 한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는 세상을 확장해 가면서 생기있게 성장해 나가는 한 존재이다. 그래서 굳이 물리적 시간으로 가늠할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성장이 아이들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는가.

작가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태도를 그림책의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주제에 따라 여러 그림책들이 언급되는데 그림책에 대한 선입견(그림책=어린이책)을 여지없이 날려주었다. 삶과 연결되지 않은 책읽기는 무용하다. 그런 면에서 책과 삶을 결합하고 서로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길잡이 역할도 해주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무루, 박서영, 어크로스, 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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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문장>

태어난 뒤에도 우리는 몇 번이고 태어나는 마음으로 산다. 제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커다란 운동장에 처음 들어설 때,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갈 때,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사랑이 올 때, 사랑이 떠날 때, 크고 작은 도전과 모험 앞에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어른의 충고란 늘 위계 속에 있어서 권위적이고 무례했다. 나는 그의 말보다 그들의 말투와 말투 속에 깃든 확신이 끔찍했다. 그럼에도 나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일으켜 주었던 말들은 언제나 나를 잡아끄는 말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는 말이었다.

아이를 단속하는 어른의 말들 대부분은 불안에 기인한다. 아이의 인생에 내재된 불행의 가능성은 부모의 가장 큰 약점이기 때문이다.

진실도 작게 말한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순수한 몰입, 외부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삽질의 조건이다.

궁금하면 해본다. 새로운 것이라면 해본다. 망할 것 같아도 일단 해본다. 하다못해 재미라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재미난 것들이 모여 재미난 인생도 될 것이다.

어떤 경험이, 그것도 평소에는 쉽게 해볼 수 없는 특별하고 놀랄 만한 경험이 한 사람을 통과하고 나면 그 사람은 결코 경험 이전의 사람와 같을 수 없다. 무언가 안에서부터 달라진다.

세상 끝은 어딜까. 지도상의 가장 먼 곳일까. 아니다. 세상 끝에는 타인들이 있다. 타인의 마음에 닿는 일이야말로 세상 가장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다.

삶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은 관성 밖에 존재했다.

어떤 이야기도 읽는 이의 세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훌륭한 열매를 맺지 않아도

경험은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 새로 문이 열리면 세계의 모양도 크기도 달라진다. 열리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세계.

한 사람의 습관이 그 사람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당신은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가? 우선은 좋은 습관을 지닌 노인이 되고 싶다. 기술이나 재능이 아니라 습관인 것은 성과보다 반복되는 리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반복해 나가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람으로 살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내 삶의 습관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노동과 생산에 관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꺼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작은 기쁨들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지혜를 가진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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