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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19. 22:10

최근 접한 책 중에서 가장 색다른 책. 무대 예술에 대한 비평은 처음 접하는 것 같다. 본격적인 비평은 아니고 산문 장르에 묶여있지만, 소프트한 비평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은 글. 무슨 비평을 이렇게 시처럼 쓰는가. 아름답고, 어려웠다. 아름답다는 건 사변적인 문장과 표현들, 그래서 낯설게 느껴지는 문장들. 어렵다는 건 책에서 언급되는 공연을 알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똑같이 낯선 문장과 표현들. 이백페이지 분량의 책을 아주 천천히 읽어야 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의 호흡에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나는 글은 '장 끌로드 아저씨'인데 읽는 데 어려움이 없어서 다른 글보다 상대적으로 술술 읽었기 때문이었을테다. 그리고 니진스키에 관한 '봄의 제전'. 니진스키의 서사가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어떤 꼭지 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몸으로 공간을 느끼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글. 

글의 내용 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이 먼저 와 닿는 책이다. 이를 테면 이런 구절들이 풍기는 독특한 아우라가 좋았다.

나는 그들의 행복을 지켜보며, 그럼에도 언젠가는 눈을 멀게 하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그들이 불행해지기를, 그 불행의 환희를 또한 알게 되기를 빈다.57

이 문장은 한국의 달라진 무대예술과 그것을 대하는 관객을 언급하면서 쓴 문장이다. 무대예술을 즐기는 것 너머, 그것을 통해 불행의 환희를 알게 되는 경지(혹은 상태)는 과연 어떤 것인가.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 같은 작품? 불행의 환희는 그것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과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역동에서 오는 것일텐데, 어떤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아, 목정원은 너무 진지하다. 

신기하게도, 아리스토엘레스의 「시학」이래, 비극이란 관객보다 고귀한 인물의 고통을, 희극이란 그보다 저급한 인물의 고통을 다루는 것으로 규정된다. 모두 고통인 것은 매한가지이나 인물에 대한 나의 거리가 다른 것이다. 고귀한 이의 고통에는 몰입하므로 슬퍼지고, 저급한 이의 고통에는 거리를 둠으로 웃음이 난다. 그리고 이 원리가 나는 언제나 기이했다. 사람은 어째서 늘 당여한 듯 거룩함 쪽에 이입하는가. 윤리적 우위라는 허상에 마음을 거대는 일은 어쩌면 그리도 쉬운가.102...내 안의 가장 어둡고 탁한 곳을 감싸는, 대신 질러주는 무참한 문장들이 좋았다. 모든 가려진 것들에 대한 완강한 편애가 좋았다. 언제고 가능하다면, 거기까지 닿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었으면 싶었다. 지워진 것들, 지워진 것들에게로, 함께 진창을 기어 닿고 싶었다.104

위 인용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이 문장에 있다. 허상으로 가려진 깊은 곳에 닿게 하는 예술. 문학과 예술이 모두 이것 때문에 영원한 것 아닌가. 에세이가 소설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 아닌가. 누구의 글에서 읽었더라.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들은 삶의 어떤 부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뭐 이런 의미이다. 나의 해방일기인가. 

무언가를 오래 좋아해온 사람이 지닌 자신만의 역사와 그 섬세한 애정의 방식. 그것만큼 내게 부러움과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다. 이 부러움은 순전한 것인데, 왜냐하면 그에게 있고 내게 없는 것이 다름 아닌 세월이기 때문이다.135

장 끌로드 아저씨에 대한 글. 장 끌로드 아저씨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좋았다. 내가 존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한 길에 오래 머문 사람들의 내재적인 태도와 성향 같은 것.

요컨대 나는 혼자였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나 혼자만을 생각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관계로부터 오는 짐들이 사라졌고,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게 가장 자연히 공명하는 아름다움들을 발견해 취하며 살게 되었다. 계절에 따라 식재료를 맛보았고, 한 꽃이 지고 다른 꽃이 피는 것을 보았으며, 많은 다리 중의 한 곳에 올라 흘러가는 강물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느린 리듬 속에서 안전을 느꼈다. 세계는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도리어 세계의 아품이 더 잘 보였다.159.

원하는 삶이라서 적어보았다.

요컨대, 나는 이 책을 아주 낯설게 읽었으며 내용을 이해하기 보다 문장과 분위기를 느꼈다. 어찌보면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의 변명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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